설교 본문: 요한복음 1장 9-13절 (개역한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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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
참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
10 |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
11 |
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지 아니하였으나 |
12 |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13 |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
오늘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 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를 받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그 이름은 지금 생각만 해도 아련한 아픔과 놀라운 행복감이 밀려오는 것은 인생들의 죄를 대신 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큰 은혜인 것입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제부터 인가 이러한 생각은 사라지고 의무적인 마음에 하는 수 없이 예배에 참석하는 종교인이 되어 있는 모양새가 많은 성도들에게 보여 안타까운 생각이 듭니다. 할렐루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 빛이시라는 말은 세례 요한이 거짓된 빛이었다는 말이 아닙니다. 요한도 물론 빛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여주는 작은 등불이었습니다. 그 세례 요한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는 참 빛이라 불린 위대한 빛이십니다. 다른 빛들을 비유적으로 그리고 모호하게 빛이라 불립니다. 거기에 비하여 예수 그리스도는 진정한 참 빛이십니다. 참 빛만이 모든 지식의 근본이요 모든 위로의 근본이 된다는 것을 믿읍시다.
빛으로 비유되는 세례 요한이 방 하나만을 비추는 형광등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례 요한은 유대와 예루살렘만 비춘 빛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이방 세계와 온 우주까지 빛을 비추시는 참 빛이신 것입니다. 이제는 신성한 계시가 과거와 같이 한 국가에 국한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에게까지 확산되었습니다.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빛은 그 빛이 자연적인 것이든 초자연적인 것이든 예수 그리스도에게로부터 비롯된 것임을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
원칙적인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성육신 이전에도 만물을 주관하시며 말씀으로서 세상에 계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계셨으며 라는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같은 모양을 취하시고 우리와 함께 거하셨다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세상에 계셨다.' 라는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광과 축복의 세계를 떠나 지금도 비참하고 우울한 세상에 오셨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에 계셨으나 이 세상에 속한 존재는 아니셨다는 사실은 사람의 생각으로는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사실 이유야 어떠하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최고의 사랑과 존경에 어린 환영을 받아 마땅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은 그분에 의해 지음 받은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바로 그분에 의해 지음 받은 세상이었으므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길 잃은 이 세상을 구원코자 오신 것이었습니다. 세상은 그에 의해 지음 받았으므로 마땅히 그분께 경의를 표하여야 할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눅 4:24,28-29 “또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가 고향에서는 환영을 받는 자가 없느니라. 28) 회당에 있는 자들이 이것을 듣고 다 크게 화가 나서 29) 일어나 동네 밖으로 쫓아내어 그 동네가 건설된 산 낭떠러지까지 끌고 가서 밀쳐 떨어뜨리고자 하되” 아주 차가운 냉대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았습니다. 그가 오셨음에도 '세상은 그를 알지 못하였다.' 라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사1:3 “소는 그 임자를 알고 나귀는 그 주인의 구유를 알건마는 이스라엘은 알지 못하고 나의 백성은 깨닫지 못하는 도다. 하셨도다.” 이것은 짐승인 소라도 제 주인을 알아보는 법이련마는 짐승 만도 못한 세상은 그 주인을 알아보지 못했던 것입니다. 이 세상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그를 주인으로 인정하지도, 환영하지도 아니했습니다. 그러나 앞으로 그가 이 세상에 심판자로 오실 때 세상은 그분을 분명하게 인식하게 될 것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에게 왔으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의 소유인 이 세상에 오셨을 뿐만 아니라 특별한 소유인 이스라엘 백성에게 오셨습니다. 이스라엘 그들은 그의 소유된 백성이므로 그들을 찾아 구원키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기 백성에게 오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대다수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였습니다. 자기 백성이 영접 하지 아니 하였습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예수님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에게서 환영을 기대할만한 자격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자기 백성들에게 임하셔서 기적과 표적으로 자신이 그 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요1:10 '세상이 그를 알지 못했다'는 말은 그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일부러 모른척했다고 하는 것이 더 정답에 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소유된 이스라엘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를 모를 수가 없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지 아니 했던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치도 않을 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도 믿음을 떠난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입으로는 자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것, 예수 그리스도의 백성이라 고백합니다. 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 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그 당시 거기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자, 즉 예수 그리스도께 충성하는 자가 남아 있었습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에는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때도 믿지 않고 거부하는 그 무리에 속하지 않는 사람들이 소수지만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이란 말의 참된 표시와 속성은 그리스도를 영접 하고 그의 이름을 믿는데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 하는 것이요 그것은 하나님의 선물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선하며 참된 것으로 영접 해야 합니다. 우리의 감정과 행위의 원리로서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을 받아 들여야 합니다. 진정한 성도의 권세는 이것입니다.
요1:12 “영접 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 것은 과거에는 오로지 유대인에게만 관계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의해서 이방인들에게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가 주어지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러한 권세를 이방인인 여러분들에게도 주심으로써 오늘날에 와서는 모든 성도들이 이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이야 말로 모든 선한 그리스도인의 형언 할 수 없는 권세입니다.
사실 그리스도인들도 원래는 비참한 이 세상의 자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라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고, 그렇게 지음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요일3:1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받게 하셨는가, 우리가 그러하도다 그러므로 세상이 우리를 알지 못함은 그를 알지 못함이라”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을 당신의 자녀라 일컬으시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는 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것입니다. 즉 예수님께서 이 권세를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아들(인자)이 되시므로 말미암아 인간의 자녀들로 하여금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입니다.
요1:13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 하나님의 모든 자녀들은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말해서 모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는 성도들은 거듭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러한 중생의 독특성은,
①소극적으로 말해서 중생이란 첫째, 혈통에 의해서도, 육정의 뜻에 의해서도 아닙니다. 벧전1:23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 여러분들이 거듭난 것은 썩어질 세상의 씨로 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여 우리가 혈육을 가진 부모의 자녀가 되는 것과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방식은 같지 않습니다.
저와 여러분들을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중생이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이 예수님을 영접 하십시오. 예수님을 여러분들의 구주요 하나님으로 여러분들의 마음에 모시면 이것이 놀라운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오! 성령님 이 시간 우리들에게 역사하여 주소서 그리하여 예수님을 마음에 영접하는 하나님의 은혜를 저들에게 허락하여 주소서 그리하면 저도 기쁘고 저들도 기뻐할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시옵소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의 죄를 회개하고 예수님을 영접 하십시오. 그리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하늘로부터 여러분들에게 임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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