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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9장 1-7절)

설교 모음/이병용 목사 설교

by Hope103 2019. 2. 8.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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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설교 본문: 요한복음 9장 1-7절 (개역한글판)

1

예수께서 길을 가실 때에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신지라

2

제자들이 물어 이르되 랍비여 이 사람이 맹인으로 난 것이 누구의 죄로 인함이니이까 자기니이까 그의 부모니이까

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이 사람이나 그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4

때가 아직 낮이매 나를 보내신 이의 일을 우리가 하여야 하리라 밤이 오리니 그 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

6

이 말씀을 하시고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그의 눈에 바르시고

7

이르시되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하시니 (실로암은 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뜻이라) 이에 가서 씻고 밝은 눈으로 왔더라


세상의 빛이신 예수님 

요한복음 9:1-7

(금곡동산교회 이병용목사 설교문)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욥 5:7 '사람은 고생을 위하여 났으니 불꽃이 위로 날아가는 것 같으니라.' 엘리바스는 인생의 당하는 모든 고난과 재앙의 원인이 사람에게 있다는 것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러면 과연 모든 고난은 인간 스스로의 문제 때문일까요? 욥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들은 이해할 수 없이 다가오는 고난에 때때로 실망하지요.    오늘의 성경은 제자들에게 예수께서 친히 자신이“세상의 빛”이라는 것과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눈먼 소경을 진흙으로 고치시는 기적과 소경의 순종하는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세상의 빛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가장 잘 나타난 곳이 이 성경입니다. 할렐루야!


  1. 고난에 대한 제자들의 생각

  1) 고난에는 원인이 있다는 생각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이란 본문 기록자의 표현은 단순한 장애자를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히 아닙니다. 그는 불행한 운명을 타고난 인생임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는 고난 속에 태어나 고난 속에 죽어가는 모든 인간의 처절한 모습을 대표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고난은 재앙과 함께 인간이 결코 반길 수 없는 하나님의 징계나 저주라는 비극적인 견해를 암시하기도 합니다. 때문에 '날 때부터 소경'이 되었다면 거기엔 필시 어떤 이유, 원인이 있을 것이 아니냐는 것이 제자들의 생각입니다. 그렇습니다. 제자들의 이런 생각을 우린 지나쳐 버려서는 안 됩니다. 정상이 아닌 데는 반드시 어떤 원인이 있을 것이라는 깨우침이 필요합니다. 진찰 없는 치료가 불가능한 것처럼 원인 없는 결과는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렇다고 이러한 생각이 옳다고 말하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어떤 환경이든지 회복 시키신다는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난다고 하십니다.


  2) 고난의 원인을 죄로만 생각

  본문 2 절에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로 인함이오니까?'라는 질문을 예수께 드린 제자들은 고난의 이유가 죄에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다른 원인은 있을 수가 없다는 듯이 고난의 원인을 죄에서 찾고, '자기입니까?', '부모입니까?'라고 '자기'와 '부모' 둘 중의 하나에 원인이 있다는 대답을 확증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고난의 원인을 '자기의 죄'에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영혼의 선재설이나 태중의 아이도 범죄 할 수 있다는 사상에서 연유된 것이라고 봅니다. 


  둘째로 고난의 원인을 '부모의 죄'에 돌린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유대인들은 자신이 죄 된 존재가 된 원인, 그래서 통회 해야 할 불행 한 인간이 된 원인을 부모의 죄로 돌렸기 때문입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시 51:5). 고난이 부모의 죄의 결과라는 사실은 구약의 여러 곳에 나타나 있습니다. 그렇다면 부모들은 자식에게 얼마나 불행한 선물을 물려주는 장본인이 되고 있는 것입니까? 여러분, 내 죄가 내 자식에게 견딜 수 없는 고난을 안겨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해보셨습니까?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죄를 청산합시다. 요일 1:9 주님 앞에 나아가 우리 죄를 자백하고 사유하심을 받으십시다. 개인적으로 저는 고라자손의 시를 좋아합니다.


  2. 고난에 대한 주님의 가르침

  1) 고난의 원인이 죄의 결과만이 아니라는 교훈

  주님은 '날 때부터 소경된 사람'의 불행, 곧 인간의 고난이 제자들이 당연한 듯이 생각하고 있는 죄 때문에만은 아니라는 놀라운 사실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본문 3 절을 보면 '이 사람이나 부모의 죄로 인한 것이 아니라'고 확고하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고난의 문제 앞에서 우리의 생각을 수정할 때가 왔습니다. 고난이 죄의 원인으로 기인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반드시 그렇지는 않다는 사실입니다. 고난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다는 것이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알 수 없는 고난의 시련에서 절망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이 놀라운 가르침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진리가 슬픔과 절망에 얽매인 자를 자유롭게 하실 것입니다.


  2) 고난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섭리

  본문 3 절 끝부분에서 주님은 명백히 말씀하셨습니다.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 할렐루야 ! 이 얼마나 놀라운 진리입니까? '날 때부터 소경된 자'에게 일찍이 하나님의 섭리가 계셨다는 말입니다. 바로 그를 통하여 하나님이 인간을 위해 무엇을 해주시는 분인지를 나타내 주시려 하셨다는 것입니다. 구약에는 소경이 고침 받은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것은 다만 사35:5 메시야의 표적으로 예언되어 있을 뿐입니다. 메시야가 오시면 소경이 눈을 뜹니다. '날 때부터 소경 된 자'가 이제 예수님의 손길에 의해서 눈이 떠진다면 이는 메시야가 오셨다는 증거입니다. 그의 불행, 그의 고난은 죄 때문이 아니라 바로 주님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이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그의 독생자를 보내셨다는 증거를 위해 소경의 고난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렇다고 이것이다 말씀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성도의 고난에는 하나님의 위대한 섭리가 깃들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러한 고난에 인내로 승리하라는 것입니다. 성도의 고난을 통해 지금도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영광을 얻으시려 한다면 그 누가 반대하며 그 누가 실망만 할 것입니까? 고난 곳에 나타난 하나님의 섭리를 발견하시고 승리하시기를 바랍니다.


  3.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때가 아직 낮이매'. 이 말씀은 우리에게 항상 기회가 돌아오는 것이 아니니 시간을 아끼라는 말씀입니다. 모든 성도는 일하기 위해 부름 받은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시간을 아껴야 합니다. 엡5:16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허송세월해서는 안 되며 시간을 아껴 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일이라고 해서 다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일을 하되 의미 있는 일을 해야 합니다. 무의미한 일을 하는 것도 허송세월과 별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러면 의미 있는 일은 무엇이고 의미 없는 일은 무엇입니까? 딱 잘라서 이것이다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의미 있는 일이란 영혼을 만족케 하는 일이며 의미 없는 일이란 육신을 만족케 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선행을 하면 그것은 의미 있는 일입니다. 육신은 고통스러울지라도 영혼은 기쁨입니다. 하늘의 천사들과 하나님께서 기뻐하십니다. 그 한 일을 통해서 선의의 이웃에게 즐거움을 줍니다. 따라서 그 기쁨은 깊고도 길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육신의 기쁨은 그 파장이 짧습니다. 그리고 이웃에게 피해를 주면 주었지 기쁨이나 득을 줄 수는 없습니다. 따라서 거기에는 쾌락 이외의 어떤 의미도 없는 것입니다.


  4. 빛을 비춰야 합니다.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다.' 예수님 이 땅에 오시기 전 세상은 어두움이었습니다. 예수는 어둠의 세상에 빛으로 오셨습니다. 빛이 있는 곳에 어둠이 용납되지 않듯이 예수님이 오셔서 모든 어두움을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이 땅에 육신으로 함께 계신 기간은 너무도 짧았습니다. 예수님은 33 년간 이 땅에 계셨으며 그나마 공생애 기간은 3 년 반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주님은 시간을 아끼고 기회를 아껴 빛의 일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이 빛의 일을 제자들에게 위임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빛의 사명을 해야 합니다.

  마 5:16 성도의 삶 전체가 '착한 행실'이어야 합니다. 여러분들은 보고 세상 사람들이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근데 아니지요.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희한한 일이 일어났습니다. 


  4. 휴식의 때가 있습니다.

  '밤이 오리니 그때는 아무도 일할 수 없느니라.'. 왜 열심히 시간을 아껴 일해야 합니까? 일할 수 있는 시간이란 제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고통을 느끼면서도 일을 쉬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안식할 시간이 있기 때문입니다.

  시 90:10 우리가 일하는 시간은 70 년 길어야 80 년이지만 쉬는 시간은 영원합니다. 만일 이 안식의 시간이 없다면 우리는 그렇게 시간을 아껴가며 일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적당히 쉬어가면서 즐겨가면서 일해도 무방할 것입니다.

  히 4:1그러나 안식은 약속되어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땅에서 일하지 않는 자에게는 안식이란 없습니다. 오히려 눅 16:25 그때부터 땅에서 누렸던 영화의 대가로 고통이 따를 뿐입니다. 그리고 그 짧은 영화의 대가인 고통은 영원합니다.


  5. 상급이 있습니다.

  딤후 4:7, 8 '내가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갈6:7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해를 무릅쓰고 고난을 감수하고 일해야 합니다. 우리의 일을 방해하는 모든 것들은 훗날에 상급 받을 것을 사탄이 질투하는 것입니다. 어떤 이유에서라도 일을 멈추는 것은 사탄에게 속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속았다면 더 이상 속지 맙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빛이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어둠을 이기고 승리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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