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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인생의 청지기 삶을 셈하라 (누가복음 16장 1-13절)

설교 모음/이병용 목사 설교

by Hope103 2019. 2. 2. 08:03

본문

설교 제목: 네 인생의 청지기 삶을 셈하라

설교 본문: 누가복음 16장 1-13절 (개역한글판)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3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 먹자니 부끄럽구나

4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5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6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7

또 다른이에게 이르되 너는 얼마나 졌느뇨 가로되 밀 백 석이니이다 이르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팔십이라 쓰라 하였는지라

8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9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

10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11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12

너희가 만일 남의 것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너희의 것을 너희에게 주겠느냐

13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네 인생의 청지기 삶을 셈하라 

누가복음 16:1-13

(금곡동산교회 이병용목사 설교문)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하나님의 은혜가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어떤 청지기가 주인의 재산을 허비하다가 발각되어 해고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실직한 뒤에 살아갈 대책을 이모저모로 궁리하다가 한 가지 방법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늘의 비유 속에는 기독교의 물질관과 인생관이 들어 있습니다. 이 비유에서 '부자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불의한 청지기'는 '나'이며, '빚진 자'는 '이웃'(타인)이고, '빚'은 '인생고', '탕감해 주는 행위'는 인생고를 덜어 주는 '봉사 행위'를 뜻하며, '불의의 재물'이란 인간이 재물의 주인인 '하나님의 뜻대로 쓰지 않는 모든 형태의 물질적 자산'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재물'은 '하나님'과 함께 섬김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인간을 섬기는 기회와 능력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주님은 교훈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네 인생의 청지기 삶을 셈하라.”


   1. 청지기란 무엇인가?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1, 2). '청지기'란 주인의 집에 고용된 자로서 주인의 소유를 주인의 뜻에 따라 주인의 이익이 되도록 잘 관리하는 '관리자'이며, '종'과는 구별되는 사람입니다. 이 비유에서는 청지기는 '모든 인간'들을 상징하고 있으며, 그것은 특히 인간 각자, 즉 '나'를 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든 인간들은 각각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집에 고용된 청지기들로서 하나님의 재산 관리에 책임을 진자들입니다. 인간들에게 주어진 모든 형태의 자산은 소유하라고 준 것이 아니라, 관리하라고 준 것입니다. 청지기인 인간은 다만 주인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 이익(영광)이 되도록 하나님이 기뻐하시도록 자산을 관리해야 합니다. 마 6:19, 20'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 두라'. 마 19:21 재물은 쌓아 두는 것이 아니라 베푸는 것입니다. 여기서 '어떤 부자'는 만물을 창조하시고 그것을 홀로 주관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부자'이시고, 또 만물의 '주인'이십니다. 삼라만상의 소유주, 이 세상의 모든 '재물'의 소유주는 하나님이십니다. 따라서 인간은 어떤 물질적 자원에 대하여(정신적, 영적 자원도 마찬가지지만) 소유권이 없습니다. 롬 11:36 오로지 소유권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2.  언제 청지기 직분의 셈하라 하는가?

  1) 누가 셈을 요구합니까?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1절) 청지기가 주인의 소유(모든 형태의 자산)를 '허비'했다 함은 청지기인 인간이 하나님의 뜻대로 그 자산을 관리하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자산에 의하여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연 환경, 즉 햇빛, 공기, 산과 들과 물, 그리고 재물, 자기의 생명, 건강, 지식, 직장, 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오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들을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에 맞도록,  하나님의 영광이 나타나도록 사용하는 자는 이 세상에 찾아보기 힘듭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께 영광이 되도록 사용한 것이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부분적인 것인지 전적인 것은 결코 아닙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누구나 '불의한 청지기'입니다.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재물, 정신적이며 영적인 모든 활동에 있어서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지 않은 것은 비일비재할 것입니다. 어떤 누구라도 다소의 차이는 있을 것이지만 거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롬 3:20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소유를 허비하는 불의한 청지기일 수밖에 없습니다. 


  2.  불의한 청지기

  1)  직분을 빼앗길 날이 옴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2절). '셈하다'란 말씀은 '심판'을 뜻하고,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는 말씀은 이 세상에서의 삶이 끝났다는 뜻입니다. 인간의 삶은 '청지기'로서의 삶이며, 그것이 끝나면 반드시 심판이 있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심판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인생의 대차대조표를 심사받는 것입니다. 히 9:27'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라고 했습니다.


  3.  복음적 물질관과 인생관

  재물을 비롯한 모든 자산은 하나님께서 내게 잘 관리하라고 맡기신 것이므로 그 뜻에 따라 사용되어야 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재물, 모든 자산은 청지기가 빚을 탕감해 주듯, 타인의 인생고를 경감시켜 주는 일에 사용되어야 합니다. 내게 있는 모든 자산이 '봉사의 기회와 능력'으로 작용할 때 비로소 그 모든 것들이 나로 하여금 복음적인 물질관과 인생을 갖도록 해줍니다. 그것은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러운'(3절)노쇠의 시기가 오기 전에 그렇게 해야 합니다 (4절).


  1.  잘못을 즉시 시인하는 지혜

  주인이 종의 잘못됨을 추궁하였지만 그가 본문의 서론인 1-4절에서나 본문에서도 자신의 잘못을 부인하거나 변명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이는 곧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는 것이요 인정했다는 것입니다.


  1)  솔직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솔직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득이나 이익보다는 손해나 불이익일 것입니다. 그래서 될 수 있는 대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숨기고 감추고 부인하려 듭니다. 그러나 숨기고 감추어서 얻는 이익은 그 이익을 얻는 만큼의 양심의 고통을 당하는 대가를 지불하는 것이어서 결국 이익일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솔직함은 비록 눈앞의 득은 없다 하더라도 솔직한 만큼의 양심에 기쁨이 되므로 결국 손해인 것 같은 득이요 이익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비록 그 자리나 위임 받았던 모든 권한들은 빼앗겼지만 자신의 죄를 시인함에 있어 솔직한 처세로 생명을 보존한 이 종은 참으로 지혜로운 종이라 하겠으며, 솔직은 이처럼 피상적인 것보다 궁극적인 것을 지키고 보존하는 귀한 조건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2)  용기가 있어야 합니다.

  대개의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을 즉시 시인하지 못하는 것은 용기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죄를 깊게 하고 심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자신의 잘못됨을 솔직히 시인할 수 있는 용기는 더욱 깊어지는 죄를 멈추게 하고 그 죄의 하수인이 되는 것을 방지하는 것이라 하겠습니다. 그래서 불의 하지만 솔직하고 용기 있게 자신의 잘못을 시인하는 이 종은 참으로 지혜로운 사람이라 하겠습니다.


  2.  예비하는 지혜

  이 종이 주인에게 빚진 자들의 빚을 감해 주는 것은 그들의 빚을 덜어 주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니라, 주인의 신임을 잃게 되자 그들의 신임이라도 얻어 놓아야 하겠다는 의도에서였습니다. 이같이 이 종은 불안한 자신의 내일을 준비하고 예비하는 지혜를 가진 사람입니다.


  1)  끝을 예비해야 합니다.

  만물이 영원히 존재할 수 없듯이 우리가 자신하는 건강도 지위도 재물도 다 그 끝이 있는 것이며, 종말이 기다리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갖고 있는 이 지위와 자신과 소유가 항상 내 손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때가 되면 다른 이에게 옮겨가고 새로운 주인을 찾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지혜로운 성도는 이러한 것들의 끝과 마지막을 아는 자들로 그 끝을 예비하고 준비하는 자들인 것입니다.


  2)  내일을 예비해야 합니다.

  세상 끝은 지혜자나 우매자에게나 동일한 것이어서 이 끝을 준비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수동적인 준비라면 내일, 즉 '내세'을 예비하는 것은 지혜로운 자에게만 보장된 것으로 확신에 찬 즐거움으로 준비하는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종말, 즉 '구원'만을 준비하고 예비했다고 해서 성도의 예비함이 다 끝난 것이 아니고, 그 나라에서의 상급을 위해 우리의 능동적인 행위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곧 봉사로, 희생으로, 헌신으로, 복음 전파 등으로 나타난다 하겠습니다.


  3.  과거에 매달리지 않은 지혜

  과거란 지우려고 해도 지워지지 않는 현재의 거울이기는 하지만 그 시간으로 우리가 다시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난날의 잘못들을 지금 후회하고 운다고 해서 그것들을 없애거나 바로 할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후회는 되겠지만 그 후회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이미 틀려 버리고 잘못되어지고 구부러진 지난날에 매달리지 않는 사람이요 그러한 어제에 집착하지 않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죄 된 지난날보다 오늘 어떻게 후회하지 않는 삶을 살 것인가가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과거에 어떠한 사람이었느냐' 또 '내일 어떤 사람이 되겠다'가 중요치 않다는 것입니다. 내일 지구의 종말이 온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것이 오늘을 사는 성도들에게 요구되어지는 삶의 지혜라 하겠습니다.


  1. 재물과 불의의 연관성을 교훈하심

  주님께서는 '불의의 재물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불의한 청지기에 대한 주님의 적용과 교훈도 그 비유에 못지않게 해석의 난해점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난해점은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짐에 비례하여 깊고 다양한 진리로 바뀌어질 것입니다. 재물은 본질적으로 악한 것도 아니요, 또 그 자체에 인격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견물생심'을 일으켜 우리로 하여금 '탐심'(골 3:5)을 유발시키는 마력이 있음을 인정해야 할 것입니다. 또 재물에는 보편적으로 인간사의 어두운 문화의 모습들이 서려있기에 재물과 관계 맺는 자들은 어쩔 수 없이 직, 간접적으로 재물 뒤에 있는 악의 사변들과 접촉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눅 19:45 주님 당시에도 종교지도자들의 주머니에 들어 있는 화폐들에는 선민들의 고혈과 하나님께 대한 불충과, 마 15:5, 6 이웃에 대한 위선이 서려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딤전 6:9, 10 성도들은 어떤 과정에서든지 재물을 사랑이나 의지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 될 것입니다. 잠 10:2 우리가 재물을 접할 때는 항상 그 재물에 내재되어 있는 불의를 경계하고 분별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2. 재물의 유한성을 깨우치심

  재물에 대한 주님의 견해는 11 절의 '참된 것'이라는 표현과 9절의 '없어질 때'라는 말씀을 비교해 볼 때 요 7:18 ; 살후 2:12 '불확실하고 변하기 쉬운 것'이라는 의미가 가장 재물과 불의의 연관성에 관한 가까운 해석이라고 여겨집니다. 눅 12:15-19 사람들은 불확실한 재물에 영혼을 의뢰합니다. 마 26:14,15 유한한 재물과 영원하신 주님을 바꿉니다. 그리고 행 8:17-20 진리를 재물로 사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유한적이며, 상대적인 재물을 영원하고 절대적인 것으로 섬기기에 주님께서는 재물이 불의한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혼과 더불어 내가 소유한 재물도 거듭나게 해야 합니다. 영혼이 하나님의 자녀로 인침 받은 것처럼 재물의 소유권도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야만 합니다. 재물을 하나님의 보좌와 같은 위치에 두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분의 발밑에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고후 9:8, 9 그분의 거룩한 손으로 구별하여 사용되도록 양보해야 합니다. 그럴 때 재물은 '불의의 열매'에서 '의의 열매'로 화할 것이며, 우리 삶을 참으로 윤택하게 꾸며 줄 것입니다.


  3. 재물로 장래의 유익을 도모할 것을 권고하심

  주님께서는 '불의한 재물로 친구로 사귀라 그리하면…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9절)고 권고하셨습니다. 전 11:1, 2 덕을 베풀면 곤란할 때 도움 받게 되는 것은 일반적인 이치입니다. 이처럼 영원한 처소'를 위해 재물을 사용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재물로 영생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결코 해서는 안 됩니다. 또 선행으로도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킬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다만 재물로 선행을 하여 '신앙의 좋은 친구'를 만들어 놓으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천국에 들어갈 때 모든 성도로부터 호의적인 영접을 받을 수 있는 참된 신앙이 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장래에 같은 동료 성도들로부터 따뜻한 위로와 넘치는 환영 대신 인색한 자였다고 동정과 연민을 받는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이겠습니까? 거지 나사로도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위로함과 칭찬을 받는데, 하물며 넉넉한 재물을 소유했으면서도 이기적인 삶으로 인해 부끄러움의 대상이 되는 부요한 성도는 얼마나 가련한 자입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재물로 딤전 6:17:18 '영원한 상급과 위로의 터전'을 만들어 놓아야 합니다.


  4. 재물과 충성의 척도를 지적하심 

  주님께서는 이어서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서 성도의 인격을 알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10절). 그리고 그 결과에 따라 삶의 상급도 결정된다고 하셨습니다(11절). 기독교는 단순한 수양의 종교가 아닙니다. 헌신과 결단의 종교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궁극적으로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축복은 현세에서 풍요로운 물질의 향유가 아니라 하나님 아들의 생명과 인격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영혼뿐만이 아니라 물질적인 면에서도 하나님의 윤리적이며, 인격적인 요구에 순종을 해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거룩하듯 물질 활도 거룩한 것이 되어야 합니다.


  1.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삶의 허구성

  1)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는 삶이 가능한가?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13절). 예수께서는 본문에서 하나님과 재물은 결코 겸하여 섬길 수가 없다고 단언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한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과 같으므로 만일 두 주인을 섬긴다 할 때 그것은 허구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면서 재물을 사랑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반대로 재물을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는 없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렇게 단정적으로 말씀하신 것은 하나님은 섬기는 대상이지만 재물은 섬기는 대상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재물은 '친구를 사귀는데'(9절) 필요한 것이지 섬김의 대상은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섬긴다.'는 말은 '종이 된다.'는 뜻이며, 종은 하나님께만 종이 되든지 재물에게만 종이 되어야 하지 한 사람이 동시에 양쪽에 겸하여 종이 될 수는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경외하고 사랑해야 할 대상이지만 재물은 인간이 관리해야 할 대상이며, 이웃(타인)에게 봉사하기 위하여 사용하는 도구요 방편입니다. (9절)


  2.  종교와 삶의 요체

  인간이 어떤 절대적인 존재에 자신을 맡기는 행위는 신앙이요 종교적 행위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신앙의 대상은 절대적인 것이어야 하고 영원한 것이어야 하고, 불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존재는 여호와 하나님 외에는 없습니다. 재물이나 어떤 형태의 피조물도 하나님의 자리에 필적할 만한 존재란 없습니다. 그러므로 인간은 하나님에게 자신을 전폭적으로 귀의시켜야 하며, 그의 삶은 그의 종교로부터 삶의 원리를 부여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인간은 비로소 재물에 대한 의미와 그 관리의 원리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3.  인간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이유

  1)  본질적인 이유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13절). 본질적으로 인간은 창조주의 하나님께만 종이 될 수 있고, 다른 피조물에게는 종이 될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모든 피조물보다 우위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2)  기능적인 이유

  재물은 인간을 물질적 존재, 현세적 존재로 만들고 하나님은 인간을 영적 존재, 영원한 존재로 만듭니다. 그러므로 인간이 재물을 섬기면 물질화 되어 인간성을 상실하고 하나님을 섬기면 하나님의 형상으로 화해 갑니다. 이러한 두 기능이 동시에 양립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3)  관계적인 이유

  하나님과 재물에 대한 인간의 관계는 역비례적인 관계에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하나님에게 관심하는 만큼 재물에 대한 관심이 적어지고 재물에 대하여 관심하는 만큼 하나님께 대하여는 소홀해지는 것입니다.


  4.  우리의 전부를 원하시는 하나님

  본문에서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 어느 한 쪽에 전적으로 예속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뜻을 발견하게 됩니다. 물론 하나님은 인간이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만  예속되기를 바라십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인간을 가장 복되게 하고 인간답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전적인 예속을 교의학에서는 '성결'또는 '성령의 충만'등으로 표현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부분적인 충성을 원하시지 않습니다. 특히 당신의 구속 사역에 특별한 임무를 부여받은 사람들에 대해서는 강권적으로 전적인 충성을 요구하셨습니다. 창 22:12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렇게 하셨고, 마 4:18-22 사도들에 대해서도 그러셨으며, 빌 3:7-9 바울에 대해서도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전부를 원하십니다. 우리의 재능도, 시간도, 지식도, 재물도, 우리의 생명까지도 당신을 위하여 전적으로 바쳐지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은 희생의 강요가 아니라, 가장 위대하고 축복된 삶을 제공해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최고의 가치에 대한 헌신, 거기에 인생 최고의 의미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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