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요한복음 12장 1~8절
설교자: 금곡동산교회 이충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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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위한 잔치(요 12: 1~8) |
1 |
유월절 엿새 전에 예수께서 베다니에 이르시니 이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나사로의 있는 곳이라 |
2 |
거기서 예수를 위하여 잔치할쌔 마르다는 일을 보고 나사로는 예수와 함께 앉은자 중에 있더라 |
3 |
마리아는 지극히 비싼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근을 가져다가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의 발을 씻으니 향유 냄새가 집에 가득하더라 |
4 |
제자 중 하나로서 예수를 잡아 줄 가룟 유다가 말하되 |
5 |
이 향유를 어찌하여 삼백 데나리온에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주지 아니하였느냐 하니 |
6 |
이렇게 말함은 가난한 자들을 생각함이 아니요 저는 도적이라 돈 궤를 맡고 거기 넣는 것을 훔쳐 감이러라 |
7 |
예수께서 가라사대 저를 가만 두어 나의 장사할 날을 위하여 이를 두게 하라 |
8 |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거니와 나는 항상 있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
저도 이렇게 인사를 해 볼까요?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오늘 예배에 모인 분들을 진심으로 환영합니다.
한 인디언 추장이 손자에게 들려준 우화입니다.
사람의 마음에는 두 마리의 늑대가 있다고 합니다. 한 마리는 흰 늑대이고, 다른 한 늑대는 검은 늑대입니다. 두 마리의 늑대는 우리의 마음속에서 계속 싸우고 있습니다.
검은 늑대는 악입니다. 우리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분노, 질투, 슬픔, 후회, 오만, 거짓말, 헛된 자존심, 그리고 우리의 거짓된 자아입니다. 흰 늑대는 선인데, 기쁨, 평안, 사랑, 희망, 평온함, 겸손, 자비, 너그러움, 진실 그리고 믿음입니다. 똑같은 싸움이 모든 사람에게 일어나고 있다고 추장은 자신의 손자에게 알려주었습니다. 손자가 물어봤습니다. 어떤 늑대가 이기나요? 누가 이길 것 같습니까? 추장이 손자에게 대답했습니다. 니가 먹이를 주는 쪽이 이긴단다. 우리는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누구의 편에 서 있습니까?
오늘 말씀은 유월절 6일 전..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기 불과 며칠을 앞두고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의 분위기와 긴장감은 거의 최고조로 달했다고 해도 무방할 것 같습니다. 바리새인들과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하면 죽일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보면 신고해서 잡게 했습니다. 현상수배범이 된 것이죠.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미워했던 것은 예수님을 시기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아지는 것을 보고 질투가 난 것이죠. 그들은 그렇게 검은 늑대에게 먹이를 주기 시작했습니다. 물론 그들은 자신들이 예수님을 미워하는 것이 시기와 질투라고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예수님을 죽이는 것이 이스라엘을 로마로부터 구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의 생각은 이랬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고, 예수님의 인기가 높아지면 사람들이 모이게 되고, 그를 구원자로 생각한 사람들이 그 당시의 제국인 로마로부터 독립을 하려고 할 것이기 때문에 로마사람들이 이스라엘을 모두 전멸시켜 버릴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의 멸망을 막기 위해서 예수님을 없애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실 비겁한 변명입니다.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시기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것은 예수님을 재판했던 빌라도조차 알았던 사실입니다. 만약 정말 이스라엘을 위했다면.. 하나님을 믿었다면..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을 통해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날 수 있다는 것도 믿어야 했습니다. 세상의 제국보다 하나님의 힘이 크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두려워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수많은 일들을 시기하고 질투하여 예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심지어 나사로까지 죽이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한다고 했던 그들이, 자신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기에 하나님 외에 그 누구의 종이 된 적 없다고 했던 그들이, 나중에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로마의 황제 가이사 외에 자신들의 왕이 없다고 고백하는 모습은 참 아이러니하기도 합니다.
이것이 검은 늑대... 죄의 본질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문제가 스스로에게 잘 보이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주님이 주시는 빛이 없다면 우리는 이 늑대가 검은 늑대인지, 흰 늑대인지 구분하기가 어렵습니다. 시기와 질투에 사로잡혔을 때, 이것이 질투인지 아니면 상대방이 잘못한 일에 화나는 것인지 분별하기 쉽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항상 기도하고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밝혀 주셔서 우리가 욕심으로 일하는지, 아니면 하나님을 향한 사랑으로 일하는지 분별할 수 있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마음을 깨닫게 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의 잔치는 이런 시기와 질투, 그로인해 유대인의 위협 가운데서 벌어졌습니다. 저들이 예수님을 잡아 죽이기 위해 혈안 되어 있고, 어떻게 하면 죽일까 연구하는 가운데... 예수님이 계신 그 곳은 놀랍게도 평화롭고 또 즐거움이 가득했습니다. 잔치가 베풀어졌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기 위해 몰려왔습니다. 잔치 집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튿날에 예수님은 나귀를 타고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찬양을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집니다. 유대인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했지만 그들의 노력과 전혀 상관없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우리에게도 이과 같은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상황은 시시각각 변할 수 있습니다. 문제도 생길 수 있고, 예수님을 노렸던 사람들처럼, 우리를 방해하는 사람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때로는 내가 실수해서 넘어질 수도 있고, 주변 환경 때문에, 혹은 그냥 재수가 없어서 안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을 약속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섭리를 믿고 지금의 어려움을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이제는 잔치 속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잔치 이야기에는 예수님을 제외하고 네 명의 등장인물이 나옵니다. 나사로가 나오고, 마리아와 마르다, 그리고 가룟유다가 나옵니다. 나사로는 예수님과 함께 앉아 있는 사람들 중에서 함께 식사를 했고, 마르다는 잔치를 위해서 일을 했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렸으며, 유다는 마리아가 향유를 낭비한다고 비판합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는 일을 맡았나봅니다.
교회에 나온 사람들이 이렇게 네 부류로 나뉜다고 한다면 과연 여기 모인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마르다처럼 봉사하는 사람, 나사로처럼 식사하는 사람, 마리아처럼 순전한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사람, 그리고 그것을 비판하는 사람. 저는 차마 마리아 정도 된다고는 양심에 찔리고.. 유다는 그래도 목산데... 그 정도까지는 아닌 거 같고.. 예수님과 함께 먹는 나사로나 마르다 정도 생각했습니다. 그 중에 좋아 보이기는 나사로가 예수님 옆에 앉아 먹으니 좋겠다는 생각도 했죠.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그렇게 네 명에 대해서 조금 더 깊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성경을 헬라어 원어로 찾아보면 마르다를 이야기 할 때 “일을 하다(diakonevw (디아코네오))”는 종이 되다는 의미를 내포한 그런 단어를 사용합니다. 또한 나사로가 앉은 자(ajnavkeimai(아나케이마이)) 중에 있었는데 “앉은 자”는 손님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원어 단어에로.. 마태복음 22장 10절에 나오는 혼인잔치의 손님도 같은 단어를 쓰고 있습니다. 가룟유다는 대 놓고 도둑(klevpth"(클렙테스))이라고 표현했죠.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고 온 것이라 했습니다. 마리아가 드린 순전한 향유에서 “순전하다”는 의미는 믿을만하다는 뜻으로 믿음을 가리키는 피스티오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헌신을 하는 사람입니다.
여기 나온 여러분은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또 어떤 사람이 되고 싶으십니까? 저의 소망은 저를 포함한 여기 모두가 마리아와 같은 사람이 되기를 바랍니다. 한 번 스스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물론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우리가 자신을 제대로 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자기의 모습을 바르게 볼 수 있기를 주님께 기도해야합니다.
가끔 주님이 깨닫게 해 주시는 저의 모습은 종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주인으로 인정하지만 아직 아버지라 인정하지는 못하고 있는 그런 모습을 비추어주실 때가 간혹 있습니다.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르지 못하고 형을 형이라 부르지 못하는... 그 은혜를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런 모습이 아직 저에게는 남아 있나봅니다. 우리의 모습이 잔치의 손님의 모습인지, 아니면 그를 위해 일하는 종의 모습인지... 자녀의 모습인지 기도하며 스스로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주님이 원하시는 그런 모습까지 자라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소망합니다.
오늘의 잔치.. 예수님을 위한 이 잔치에... 안타깝게도 예수님의 적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 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로 인해 예수님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잔치 밖의 문제를 떠나서 잔치 안에서... 주님이 주신 평안과 안식 안에서도 우리는 문제를 발견하게 됩니다.
참된 평안을 찾았나 했는데... 그 속에서도 내 속에 있는 쓴 뿌리는 어느새 주님이 주신 평안을 갉아먹고 주님이 주신 하나님의 나라를 빼앗아 가는 것을 봅니다. 연약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를, 평안을 빼앗길 때가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너무 쉽게 넘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여전히 이루어졌으며, 하나님의 영광은 더욱 드러났고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은 결국 완성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가룟 유다와 같은 문제에서도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졌고, 그 분의 은혜는 더욱 풍성히 온 세상에 미치게 되었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끝까지 이끌어 가십니다. 우리에게 복을 더해 주십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더 힘들게 하고, 가까운 사람 때문에 실망하고, 은혜 받은 후의 스스로의 모습에 낙심하게 되더라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끌어 가십니다.
오늘 말씀에는 하나님의 뜻에 동참한 한 사람이 나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그 장례를 예비하고 준비한 사람이 나옵니다. 바로 마리아입니다. 그녀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온 집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넘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가 축복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이 가룟 유다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유다가 예수님을 팔았으니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시는데 가장 큰 일등 공신이라 생각할 수 있지만... 성경은 그렇게 이야기 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욕심대로 악을 행했습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동참한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욕심대로 죄를 지었을 뿐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한 사람이 마리아라고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그녀는 300데나리온이나 하는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붇고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아 주었습니다. 300데나리온은 노동자의 1년 연봉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자신의 가장 귀한 것. 그것을 믿음으로 주님의 발에 쏟아 부은 마리아의 헌신으로 잔치 집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례가 준비되었습니다. 마리아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졌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에서 마리아를 통해서 주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었습니다. 헌신된 한 사람으로 인해 온 교회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흘러넘치게 되었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우리 금곡동산교회 성도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축복합니다. 주님의 영광이 우리를 통해서 드러나기를 소망합니다.
마리아가 예수님께 향유를 붇자 그것을 본 가룟 유다는 마리아를 책망했습니다. 그것을 팔아서 차라리 가난한 사람들을 나누어 준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도울 수 있는데 그것을 허비하느냐고 말한 것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이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도 말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는바와 같이 유다가 그렇게 말한 것은 정말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 한 말이 아니었습니다. 돈 관리를 하고 있었고 돈을 조금씩 훔쳐갔기 때문에 이런 말을 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유다를 책망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돌아보는 것도 너무 중요한 일이지만 그것보다 예수님을 향한 마음이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이 마음의 중심에 있지 않으면 그것은 결국 흔들리고 때로는 유대인들처럼 시기하고, 때로는 유다처럼 욕심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께 예배도 드리고,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를 사랑하고, 다른 사람도 돕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이 아니라면... 다른 무언가가 조금이라도 섞여 있다면... 결국 우리는 넘어지게 될 것입니다. 열정은 주변 사람들을 피곤하게 하고, 좋은 의도로 시작한 봉사와 헌신은 시기하고 욕심내는 일로 너무 쉽게 변해버립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마음입니다. 그 마음의 중심이 예수님께 있어야 합니다. 마리아는 그 중심이 예수님께 있었습니다. 그렇기에 300데나리온이라는 거금을 주님께 드릴 수 있었습니다. 유다는 그 중심이 예수님께 있지 않았습니다. 그렇기에 가난한 자들을 돕는 귀한 일을 하면서도 욕심이 들어가 도둑질 하고 결국 예수님을 은 30에 팔아버리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혹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이외에 다른 무언가가 섞여 들어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우리의 중심이 오직 예수님께만 있기를 소망합니다. 다른 모든 것은 그 분의 발에 깨뜨려 드리기 소망합니다. 우리의 마음을 온전히 주님께 드리기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맺겠습니다. 우리의 마음에는 흰 늑대와 검은 늑대가 있다고 합니다. 어쩌면 마리아와 유다가 대치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는 누구의 편에 서고 있습니까?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주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하나님의 영광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결과는 정해져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오직 주님께만 있기를 소망합니다. 과정은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고난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은.. 그 축복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때로는 주께서 주신 평안 가운데...
하나님의 선물 가운데에도 우리를 넘어지게 하는 많은 일들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주님이 우리를 이끌어 가시기에 우리는 희망을 놓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뜻에 동참하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복합니다. 우리의 중심을 예수님께만 두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길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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