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욥기 42장 1~9절
설교자: 금곡동산교회 이충만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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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난 속의 지혜 (욥기 42장 1~9절) |
1 |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이르되 |
2 |
주께서는 못 하실 일이 없사오며 무슨 계획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 줄 아오니 |
3 |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는 자가 누구니이까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
4 |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는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 |
5 |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
6 |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거두어들이고 티끌과 재 가운데에서 회개하나이다 |
7 |
여호와께서 욥에게 이 말씀을 하신 후에 여호와께서 데만 사람 엘리바스에게 이르시되 내가 너와 네 두 친구에게 노하나니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
8 |
그런즉 너희는 수소 일곱과 숫양 일곱을 가지고 내 종 욥에게 가서 너희를 위하여 번제를 드리라 내 종 욥이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것인즉 내가 그를 기쁘게 받으리니 너희가 우매한 만큼 너희에게 갚지 아니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라 |
9 |
이에 데만 사람 엘리바스와 수아 사람 빌닷과 나아마 사람 소발이 가서 여호와께서 자기들에게 명령하신 대로 행하니라 여호와께서 욥을 기쁘게 받으셨더라 |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그 말씀은 우리에게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합니다. 또한 성경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생명이 있는 말씀입니다. 성경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신앙생활에 있어서 바른 길로 갈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은 우리의 믿음의 여정에 있어서 절대적인 방향을 제공하는 지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심지어 성경의 순서도 우리의 신앙생활과 믿음의 여정에 관련된 것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먼저 신, 구약 성경을 나눠서 생각해 보면 신약은 먼저 마태복음부터 요한복음까지 4복음서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예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신 것이 무엇인지 기록되어 있죠. 그에 맞게 구약은 모세오경을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율법은 어떤 것인지 기록 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에 나오는 여호수아부터 에스더까지 역사서라고 부릅니다. 신약에는 사도행전이 역사서라고 하는데, 하나님을 만난 후 그 분의 은혜의 경험을 이야기 하고, 또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도 기록되죠.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하나님의 일하시는 것들을 경험한 다음에 오는 것은 지혜문헌이라고 하는 부분입니다. 신약에는 서신서로 실제 상황에 맞게 적용하는 부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지혜문헌은... 욥기입니다. 고난이죠. 하나님에 대해서 알고 경험한 다음에 우리가 경험하는 것은 고난... 주여.. 그리고 그것을 지나 우리는 시편, 하나님을 찬양하게 되고, 지혜를 얻게 되며 아가서 하나님과 깊은 사랑을 경험하게 됩니다. 또한 예언서처럼 하나님의 나라를 사모하며 그것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그 중에 욥기에 대해서 이야기 하겠습니다.
욥기는 우리에게 수많은 의문을 자아내는 성경입니다.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욥은 대체 왜 그런 고난을 당했을까? 라고 물어본다면 아무리 성경을 읽어도 답이 나오지 않습니다. 우리 삶에 적용했을 때 우리가 어려움이 있고 고난 가운데 있을 때 왜 그런 고난이 왔는지 고민하지만 답이 잘 안 나온다는 것이죠. 제 생각에는 솔직하게 이유가 그렇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고난이 온 이유를 찾는 것은 이유를 알고 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지 호기심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해결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히려 우리가 해결 할 수 없는 문제가 고난의 이유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더 절망하게 될 것입니다.
욥기 또한 왜 욥이 고난을 당했는가? 라는 관점으로 본다면 우리는 욥기를 잘못 보는 것입니다. 욥은 의인입니다. 그런데 고난을 당합니다. 고난의 이유가 단순히 스스로의 죄에만 있는 것은 아니라고 성경에서도 말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성경의 관점에서 특히 잠언이나 전도서에서 살펴본다면 의인은 지혜자라고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잠언에서는 지혜로운 사람과 의인은 같은 의미로 쓰입니다. 또한 욥기에서 욥을 소개할 때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에서 떠난 자라고 소개하고 있죠. 그리고 욥기 28장 28절에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이고, 악을 떠난 것이 명철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욥은 의인이기 이전에 지혜롭고 명철한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욥이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욥기의 문제는 의인이 왜 고난을 당하는가? 가 아니라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는 거시 지혜인가? 라는 관점으로 읽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게 욥기를 바라볼 때 성경은 우리에게 정말 많은 것을 이야기 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욥은 고난 속에서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욥 1:22). 우리가 고난 가운데 꼭 명심해야 할 자세죠.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치시더라도 하나님께 가까이 가고, 하나님께 아뢰겠다고 말하며(욥 13:15),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 내가 순금 같이 되어 나오리라(욥 23:10). 라고 욥은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고난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 어리석은 것이고,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지혜이고 문제 해결의 답이라는 것을 욥기는 우리에게 알려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좋은 분이기 때문입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고난 가운데 지혜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혹 어려운 일이 있습니까? 고난의 시기를 지나가고 있는 분이 있습니까? 때로는 내가 잘못해서, 혹은 다른 이유로도 하나님이 나를 치신다고 느껴지더라도 도리어 하나님께 나를 맡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이 나를 이끌어 가시는 그 길이 나에게 가장 선하고 아름다운 길이라는 것을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매달리는 것이 바로 지혜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고난이 왔을 때 더욱 하나님을 붙잡고, 더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욥기가 지나 시편이 있는 것처럼... 우리의 삶에 고난이 지나 선하시고 긍휼하신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 고난 가운데, 특히 이유를 알 수 없는 고난이 내게 찾아왔을 때, 심지어 하나님이 나를 미워한다 생각들 때, 우리가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하나님에 대해 원망하게 되는 것이 매우 일반적입니다. 정답을 이야기 하는 것이 우리에게 정답이 되지 않을 때가 너무나 많죠. 알면서도 안 되는 일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욥의 친구들이 한 말을 보십시오. 다 정답 같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욥에게 아무런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때로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정답이 아니라는 것을 꼭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말이 좀 이상한가요? 정답을 말하는 것이 지혜는 아닙니다. 욥의 아내처럼 차라리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말하니까 욥이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라는 훌륭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마 욥의 아내가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으니 화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까? 라고 했다면 아마 이 마누라고 자기 안 아프다고 막 말 하냐고 욕을... 욕은 안했겠죠.. 어째든 정답을 말하는 것이 지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단순히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야 한다.’라는 것은 문자적으로 정답이 될 수는 있더라도 ‘지혜’가 되지는 못할 것입니다. 욥기는 단순히 그렇게 그치지 않습니다.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께 가까이 갈 수 있는지, 적어도 우리에게 그 방향은 제시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욥에게 나타나셔서 욥에게 일어나신 일에 대한 설명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욥에게 정답이 되었습니다. 지혜였습니다. 그것도 단순히 어쩔 수 없는 복종이 아니라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약 5:11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
자비하시고 긍휼하신 하나님을 경험한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은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라는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에 때로는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일들 때문에 고난 중에, 어려울 때 원망할 때도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우리가 믿는다면 우리도 욥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고난 속에서 지혜. 그 문제의 정답은 하나님을 더 가까이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언젠가 우리는 ‘내가 겨우 이 정도 힘들었는데, 하나님은 나에게 너무 큰 것을 주셨습니다.’라고 고백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하나님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으면 우리는 오해하고 있는 것인지도 잘 알기 힘듭니다. 스스로 생각할 때는 하나님을 바로 알고 있다고 생각할 때가 더 많습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문자적으로 정의하기 어려운 인격적인 분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욥의 세 친구와 욥의 대화는 거의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라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욥의 이야기와 마찬가지로 세 친구들의 이야기를 잘 보면 하나님에 대해서 틀린 부분은 전혀 없어 보입니다. 유명한 네 시작은 미약하였으나 네 나중은 심히 창대하리라는 말씀도 욥이 아니라 욥의 친구 빌닷이 한 이야기입니다. 문자적인 내용은 무엇이 잘못된 이야기라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옳은 말이 더 많습니다.
욥기를, 친구들과의 대화를 깊이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욥의 세 친구의 이야기가 모두 맞는 말이고, 거기서 잘못된 것이 없다 생각 드신다면 저는 확실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 또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는 진실을 성경이 말해주는 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가리켜 말한 것이 내 종 욥의 말 같이 옳지 못함이니라” 우리가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 그 이유는 바로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에 대해 제대로 안다면 우리는 그 사랑과 자비와 긍휼로 인해 절대로 하나님을 원망할 수 없을 것입니다. 혹시 욥의 세 친구의 말이 전부 옳은 말처럼 들리십니까? 하나님을 바르게 볼 수 있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하나님을 단순히 율법의 징벌에서만 생각하십니까? 혹시 더 나아가 하나님이 우리를 억압하는 존재로 오해하지는 않으십니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을 바르게 알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을 모르기 때문에 오해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오해하지 않고 바르게 알 때 우리는 진정으로 우리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을 것이고,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를 누릴 수 있을 것입니다.
욥기의 결론 마지막에 이르면 이제 하나님이 욥에게 직접 나타나십니다. 그리고 욥이 대답하지 못할 질문을 계속 하셨습니다.
38:4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에 네가 어디 있었느냐 네가 깨달아 알았거든 말할지니라
38:5 누가 그것의 도량법을 정하였는지, 누가 그 줄을 그것의 위에 띄웠는지 네가 아느냐
38:6 그것의 주추는 무엇 위에 세웠으며 그 모퉁잇돌을 누가 놓았느냐
38: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38: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39: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그런데 이런 질문 가운데 욥은 도리어 하나님께 회개하고, 또 귀로만 들었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았다면서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을 제대로 알게 된 것. 하나님을 만난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것, 경험하는 것이 모든 문제의 해결이 되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기에 문제를 만날수록, 고난에 있을수록, 우리는 고난의 해결에 앞서 하나님께 가까이 가기를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런 질문들을 하셨을까요? 당연히 자신을 알려 주시기 위해서겠죠. 그러나 한 가지 더 알아야 하는 사실은 이 질문들에 나온 말씀들은 욥이 고난 가운데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나왔던 이야기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욥은 말합니다.
욥 3:3 내가 난 날이 멸망하였더라면, 사내 아이을 배었다 하던 그 밤도 그러하였더라면
욥 3:8 날을 저주하는 자들 곧 리워야단을 격동시키기에 익숙한 자들이 그 밤을 저주하였더라면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8:12 네가 너의 날에 아침에게 명령하였느냐 새벽에게 그 자리를 일러 주었느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41:1 네가 낚시로 리워야단을 끌어낼 수 있겠느냐 노끈으로 그 혀를 맬 수 있겠느냐
또 친구들과 논쟁하면서 이야기 합니다.
욥 28: 12 그러나 지혜는 어디서 얻으며 명철이 있는 곳은 어디인고
욥 28:14 깊은 물이 이르기를 내 속에 있지 아니하다 하며 바다가 이르기를 나와 함께 있지 아니하다 하느니라.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8:16 네가 바다의 샘에 들어갔었느냐 깊은 물 밑으로 걸어 다녀 보았느냐
욥은 한탄했습니다.
욥 6:5 들 나귀가 풀이 있으면 어찌 울겠으며 소가 꼴이 있으면 어찌 울겠느냐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39:5 누가 들나귀를 놓아 자유롭게 하였느냐 누가 빠른 나귀의 매인 것을 풀었느냐
욥은 말합니다.
욥 30:29 나는 이리의 형제요 타조의 벗이로구나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욥 39:13 타조는 즐거이 날개를 치나 학의 깃털과 날개 같겠느냐
욥 39:18 그러나 그것이 몸을 떨쳐 뛰어갈 때에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를 우습게 여기느니라
(심지어 자신의 신세를 타조의 벗이라고 표현했는데 하나님은 타조가 떨쳐 뛰어갈 때는 말과 그 위에 탄 자도 우습게 여긴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 넌 타조의 친구와 같구나. 그런데 그 타조의 위대함을 너는 아느냐. 이정도면 우문현답이죠.) 하나님이 욥에게 나타나셔서 욥이 대답할 수 없는 말들로 질문했던 이야기들은 사실 대부분 욥이 친구들과 논쟁하며 했던 이야기였습니다. 그렇기에 욥은 “나는 깨닫지도 못한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도 없고 헤아리기도 어려운 일을 "하였나이다”라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욥은 자신이 한 말이 무슨 말인지도 몰랐습니다. 고통으로 인해 했던 수많은 말들, 자신이 당한 고난을 비유했고 풍자했던 수많은 이야기들의 진정한 의미를 욥은 알지 못했습니다. 자신의 고난의 의미, 그것이 가져다주는 영적인 축복과 영광.... 그 모든 것의 의미를 조금도 알 수 없었습니다.
우리도 그렇습니다. 지금의 상황, 어려움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안에 숨겨진 하나님의 선하신 역사를 조금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 사랑을 하나님이 주실 영광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로 인한 것임을 우리는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욥이 했던 이야기들로 욥에게 말씀 하셨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은 욥이 고난 받고 어려웠던 그 처음부터 욥의 이야기들을 다 듣고 계셨다는 이야기입니다. 처음부터 욥과 함께 하셨습니다. 단 한 번도 욥을 떠난 적 없으신 분입니다. 작은 신음도 다 듣고 계신 분입니다.
그렇게 우리와도 함께 하십니다. 함께 하시고, 듣고 계십니다. 우리를 버리지 않고, 작은 신음도 다 듣고 응답하시는 그런 하나님입니다. 그분의 긍휼하심과 자비를 기대하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바랍니다. 그 자비와 긍휼을 기억하며 고난이 올 때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 소망합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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