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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 사람(에스더 3장 1~6절, 4장 14절)

설교 모음/이충만 목사 설교

by Hope103 2019. 11. 15. 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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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다른 세상 사람

설교 본문: 에스더 3장 1~6절, 4장 14절

설교자: 금곡동산교회 이충만 목사
주일예배 설교문

 

다른 세상 사람(에스더 3장 1~6절, 4장 14절)

1

그 후에 아하수에로왕이 아각 사람 함므다다의 아들 하만의 지위를 높이 올려 모든 함께 있는 대신 위에 두니

2

대궐 문에 있는 왕의 모든 신복이 다 왕의 명대로 하만에게 꿇어 절하되 모르드개는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하니

3

대궐 문에 있는 왕의 신복이 모르드개에게 이르되 너는 어찌하여 왕의 명령을 거역하느냐 하고

4

날마다 권하되 모르드개가 듣지 아니하고 자기는 유다인임을 고하였더니 저희가 모르드개의 일이 어찌 되나 보고자 하여 하만에게 고하였더라

5

하만이 모르드개가 꿇지도 아니하고 절하지도 아니함을 보고 심히 노하더니

6

저희가 모르드개의 민족을 하만에게 고한고로 하만이 모르드개만 죽이는 것이 경하다 하고 아하수에로의 온 나라에 있는 유다인 곧 모르드개의 민족을 다 멸하고자 하더라

14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다른 세상 사람

 

혹시 300이라는 영화를 아십니까?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1세는 아버지가 이루지 못한 그리스 정복을 위해서 대군을 이끌고 전쟁을 일으킵니다. 그 전쟁, 2차 페르시아전쟁을 배경으로 한 영화입니다. 물론 역사적 사실과는 다른 부분이 많아 판타지 영화라는 평도 있지만, 식스팩을 가진 상 남자, 스파르타인들의 웅장하면서도 치열한 전투장면에 인기가 많았습니다. 디스 이즈 스파르타...

 

당시에 제국이었던 페르시아와의 전쟁에서 두려움 없이 싸움에 임하는 스파르타 전사들의 용기는 정말 대단하다 생각이 듭니다. 스파르타 전사들은 적이 얼마나 있냐고 묻지 않는다고 합니다. 적이 어디 있느냐고 만 묻습니다. 아마 우리 중에 가장 용감하고 열정적인 사람도 스파르타로 간다면 그 곳에서는 겁 많고 게으른 사람으로 비춰질 것입니다. 그런 그들의 교육방식을 스파르타식 교육이라고 하죠. 강압적이고 힘든... 강하게 키우는...

 

당연히 요즘 시대에는 맞지 않습니다. 가치관 자체가 너무 다릅니다. 사실 단순히 가치관이 맞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 교육은 스파르타를 말아먹은 최악의 실수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때는 그것이 당연한 줄 알았을 것입니다. 전사가 되기 위해 목숨을 걸고 노력하지 않는 자는 낙오된 자였고 살아남는 자만이 강자였습니다. 맞을수록 피부가 단단해진다고 생각해서 단련의 목적으로 무파별한 폭행을 하고, 하루 24시간 중 거의 10시간을 군사훈련으로 보냈다고 합니다. 영화에서 나온 것처럼 20세 정도가 되면 통과의례로 산에 창을 들고 혼자 짐승을 잡아와야 했습니다. 강한 짐승을 잡을수록 자신이 강한 전사라는 것이 증명되기 때문에 늑대나 멧돼지를 잡으려고도 부단히 노력했다 합니다. 그런 시대가 있었던 것이죠. 우리는 참 좋은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야만적이라 표현할 수 있고... 인간적이지 못하다 생각 도 듭니다.

 

그런데 우리가 현재의 가치관으로 스파르타를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이, 어쩌면 성경의 가치관으로 지금의 시대를 바라보면 느끼게 될 감정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이 듭니다.

 

마태복음 5장 44절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

 

오른뺨을 때리면... 겉옷을 뺏으면... 현실에서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아마 누군가 도와주지 않는다면 망해버릴 것 같습니다. 그렇기에 믿음의 선배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을 바벨론으로 비유하고 우리의 생활을 그 속에서 살아가는 이스라엘 백성으로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오늘 읽은 에스더서의 배경도 그렇습니다. 바벨론 후에 이제 페르시아가 유대인들을 지배하던 시대입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는 왕이 된 후 그리스와의 전쟁을 준비합니다. 3년간의 전쟁을 준비 한 후, 그는 군사들의 사기를 올리기 위해서 180일 동안 큰 잔치를 열었습니다. 잔치가 끝날 무렵 크세르크세스는 술이 잔뜩 취해서 왕후를 부르게 됩니다. 왕후 와스디의 아름다움을 백성들과 관리들이 보게 하고 자랑하기 위해서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는 것이 그 시대의 문화에서 큰 문제가 되었는지, 아니면 정치적인 이유가 있었는지 왕후는 왕의 명령을 거부하고 그 자리에 가지 않았습니다. 화가 난 크세르크세스는 왕후를 폐위시키고 새로운 왕후를 뽑게 되는데 그 사람이 베냐민 지파의 모르드개의 사촌동생인 에스더였습니다. 학자들은 그리스와의 전쟁 전에 왕후를 고르기 시작해서 전쟁이 끝난 후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을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역사적으로는 페르시아의 전쟁이 이 당시의 세계의 중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기술-멀어짐)그런데 성경에서는.. 심지어 같은 왕의 이야기를 기록하면서 그 전쟁에 관해서는 단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별 볼일 없는 포로의 이야기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다른 것 같습니다.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과 우리가 이 세상에 살아가는 목적은 아무런 상관없는 것 같기도 합니다.

 

왕은 전쟁에 패한 나라를 추스르기 위해서였는지 하만이라는 새로운 권력자를 세워 다른 신하보다 높은 지위를 주고 모든 사람들이 하만에게 복종하고 절하게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하만에게 절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무릎도 꿇지 않았습니다. 유대인이기 때문입니다. 무릎을 꿇지 않은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중 하만이 이스라엘과 원수인 아멜렉의 왕 아각의 후손이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각자손 하만. 그리고 아각과 전쟁했던 사울이 베냐민 지파였죠. 이미 나라도 멸망했는데 그게 무슨 대수라고...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지만.. 자신이 이스라엘백성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았던 모르드개는 절을 할 수 없었습니다.

 

에스더와 모르드개의 이야기를 보면 참 재미있습니다. 사실 에스더보다 모르드개가 믿음이 좋고 에스더의 멘토와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는 왕의 목숨을 구하는 공을 세워놓고도 그것이 잊혀지고 아무런 상을 받지 못했습니다. 자기보다 높은 사람과 원수 맺게 됩니다. 반면 에스더는 하나님의 은혜인지 왕후의 자리까지 올랐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하나님의 은혜로 축복을 받고 많은 물질을 얻고 흔히 말하는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많이 봤습니다. 그렇기에 그런 사람들의 믿음을 본받게 하기 위해서 자서전도 나오고 그 길을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런데 모르드개 같은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공을 세워도 묻혀 버리고... 하필 원수는 외나무다리에서 만난다고.. 괜히 왕 다음으로 높았던 하만에게 찍혀서 민족 전체가 몰살당할 위기를 맞게 됩니다.

 

모르드개가 무슨 잘못을 했습니까? 절하지 않았죠. 이유는 유다인이기 때문입니다. 자세한 상황은 알수 없지만, 포로가 되었음에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라는 정체성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에 이런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페르시아에서 마치 모르드개만 다른 세상에서 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더 심각해집니다. 하만은 왕에게 유다인들은 다른 나라 민족들과 법률이 달라서 왕의 법을 지키기 않기에 놔두어서는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유다인을 모두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지게 됩니다. 그리고 날을 정해서 유대인을 죽이고 그 재산을 약탈할 수 있도록 조서로 쓰게 됩니다. 모든 유대인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온 나라에 퍼졌습니다. 그들은 불안하고 걱정되어 떨면서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없습니다. 심지어 이미 내려진 명령은 왕도 바꿀 수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금식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 소식이 에스더에게도 전해졌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그 때 에스더는 왕의 총애를 입는 상황이 아니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 왕의 얼굴도 보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이미 총애를 잃은 거죠. 그 시대의 왕은 신의 대리자, 혹은 거의 신과 같은 존재로 여겨졌기 때문에 그 명령에 반대되는 이야기를 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 합니다. 전 왕후를 폐위시킨 전적도 있습니다. 관대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왕에 대한 암살이 많아서였는지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 함부로 가면 즉결처분... 그대로 죽게 됩니다. 그런 상황에서 모르드개는 이번에도 마치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처럼 이야기를 합니다.

 

에스더 4장 13~14절

모르드개가 그를 시켜 에스더에게 회답하되 너는 왕궁에 있으니 모든 유다인 중에 홀로 면하리라 생각지 말라

이 때에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너와 네 아비 집은 멸망하리라 네가 왕후의 위를 얻은 것이 이 때를 위함이 아닌지 누가 아느냐

그러자 에스더가 유명한 믿음의 고백을 하죠.

 

에스더 4장 16절

당신은 가서 수산에 있는 유다인을 다 모으고 나를 위하여 금식하되 밤낮 삼일을 먹지도 말고 마시지도 마소서 나도 나의 시녀로 더불어 이렇게 금식한 후에 규례를 어기고 왕에게 나아가리니 죽으면 죽으리이다

 

우리는 죽으면 죽으리라에 꽂혀서 나도 그래야겠다!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 전에 기도하는 과정이 있습니다. 그렇게 에스더는 결단하고, 3일을 하나님께 금식기도 하고 왕이 부르지 않았는데도 왕에게 갔습니다. 그런데 한 달 만에 왕을 찾아갔더니 왕이 보기에 에스더가 너무 사랑스러워 보였습니다. 심지어 원하는 것이 있으면 무엇이든지, 나라의 절반까지도 주겠다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물론 진짜 절반을 달라고 하고 거기에 유대인을 살게 했으면 아마 그 자리에서 에스더가 죽었을지도 모릅니다.

 

다행히 에스더는 어리석지 않았습니다. 금식기도하며 하나님께 지혜를 얻은 모양입니다. 바로 결론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바로 결론을 말하는 것은 지혜로운 방법이 아닐 때가 많은 것 같습니다. 늘 이야기 하죠? 정답을 말하는 것이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에스더는 왕을 위해 잔치를 베풀었으니 혹시 왕이 좋게 생각하면 하만과 함께 잔치에 오라고 말했습니다. 이해가 쉽게 말하면 보고 싶었다고 말하는 겁니다. 같이 놀자고 하는 겁니다. 왕도 알아요. 뭔가 부탁할 게 있다는 것을... 그런데 그것보다,, 당신을 위해서 잔치를 베풀었으니 일단 와서 함께 즐기자... 지금 더 중요한 것은 당신입니다... 여기에 마음이 완전히 녹은 거죠. 그것도 두 번이나 그럽니다. 에스더는 밀당의 고수였습니다. 말도 너무 예쁘게 합니다. 왕이 좋게 여기시면, 내가 왕에게 은혜를 입었으면... 사람과의 관계에 이런 것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이런 지혜가 있기를 축복합니다.

 

에스더는 잔치를 베풀어 왕의 마음을 더 즐겁게 한 다음 이야기했습니다. “나와 우리 민족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살려주세요. 왕은 당황하고 화가 났습니다. 자신이 너무 사랑하는 왕비와 그 모든 민족을 죽이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없애야죠. 그런데 그게 누구입니까? 하만입니다. 그렇게 하만은 처형되고 에스더로 인해서 모든 유대인을 구원 받게 되었습니다.

 

유대인을 죽이고 그 재산을 약탈하도록 날을 정했는데, 그 날에 유대인들은 무장하고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도록 했습니다. 먼저 공격하는 것까지도 허락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권력의 중심에는 하만이 아니라 에스더와 그의 사촌인 모르드개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이 유대인을 도왔습니다. 원수들이 유대인들을 죽이려고 했던 날이 도리어 유대인들이 자기 원수들에게 보복할 수 있는 날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똑같은 날인데... 그 날이 전에는 절망의 시간이었으나.. 기쁨의 날로, 구원의 날로 바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고통과 절망을 기쁨과 행복으로 변화시켜 주시는 분입니다. 절망과 고통이 행복과 즐거움으로 바뀌는 오늘 말씀의 역사가 우리 금곡동산교회 모든 성도들에게 임하길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이야기가 있습니다. 에스더는 두 번의 잔치를 열었습니다. 첫 번째 잔치와 두 번째 잔치.. 하만은 그 사이에 모르드개를 죽이기로 결심했습니다. 에스더가 왕과 하만을 초대한 두 번째 잔치가 열리기 전에 모르드개를 죽이는 것이 하만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큰 나무를 만들어 놓고, 모르드개를 죽이기 위해 허락을 구하려고 왕을 찾아갔습니다. 모르드개의 죽음은 에스더의 노력으로 구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만이 찾아가기 전날 밤에, 하필 왕이 잠이 안 왔습니다. 그래서 왕궁의 일기를 보게 됐습니다. 하필... 그러다가 자신이 암살당할 뻔 했는데, 누군가 신고해서 자신의 목숨을 구했다는 내용이 나왔습니다. 신고한 사람은 모르드개였습니다. 혹시 무슨 상을 준 것이 있는지 물어봤는데, 아무런 상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공을 세우고 잊혀진 사건입니다. 바로 그 타이밍에 하만이 왕에게 왔습니다. 왜 왔나요? 모르드개 죽이려고.... 하만이 오자마자, 하만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왕은 먼저 물어봅니다.

 

에스더 6장 6절

하만이 들어오거늘 왕이 묻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는 사람에게 어떻게 하여야 하겠느뇨 하만이 심중에 이르되 왕이 존귀케 하기를 기뻐하시는 자는 나 외에 누구리요 하고

(하만은 어떻게 생각했습니까? 아...나네... 또 뭘 주시려고.. 그만 주셔도 되는데.. 아 참....) 그래서 하만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 사람에게 왕의 왕관을 씌우고, 왕의 왕복을 입히고, 왕이 타고 다니던 말에 앉게 하고, 왕 다음 가는 신하가 성을 돌아다니며 왕이 존귀하게 하는 자는 이렇게 할 것이다. 라고 외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왕이 존귀하게 하고 싶은 사람이 지금 누구입니까? 모르드개. 왕 다음 가는 신하는 누구 입니까? 하만. 그래서 왕 다음으로 가는 신하인 하만이 직접 모르드개의 머리에 왕관을 씌우고, 왕복을 입혀주고, 왕의 말에 태워 성을 돌아다니며 왕이 존귀하게 게 하시기를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외치게 됩니다.

 

에스더의 계획에서는 구원받을 수 없었던 모르드개, 그러나 그가 성경에서 고백한 것처럼 다른 곳을 통해서 구원을 받았습니다. “네가 만일 잠잠하여 말이 없으면 유다인은 다른 데로 말미암아 놓임과 구원을 얻으려니와 ” 이 말이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우연이겠습니까? 이것을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신뢰하는 자에게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베푸시는 분입니다. 하만은 모르드개를 죽이려 했지만, 그 날 오히려 모르드개를 높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면 에스더가 왕비가 되고 이스라엘을 구원한 것은 에스더의 힘일까요? 그것도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모르드개가 말한 것처럼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구원하기 위해 에스더가 왕비가 되게 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우연히 일어나는 도움의 손길들... 그것이 우연이겠습니까? 하나님은 뭔가 특별한 기적으로 우리에게 보여주실 때도 있지만, 이런 일상적인 생활 속에서 마치 우연인 것처럼 간섭 하시고, 우리에게 너무 좋은 것을 주시는 분입니다. 우리의 아픔과 고통의 날을 구원의 날로 바꿔주시는 분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이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참 많습니다. 그것을 통해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지만.. 우리가 기도할 때는 하나님이 말씀을 잘 안하시기 때문에 어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런 생각으로 본다면 에스더서는 참 우리의 현실에 맞는 말씀 같습니다. 하나님이 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 전혀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시가 없어 보이는 이 상황에서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을 모르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에스더서에 나오는 하나님은 숨어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모든 일에 간섭하고 주관하고 있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모르드개는 정말 다른 세상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페르시아에 살면서 페르시아의 법에, 왕의 명령을 따라 살지 않았습니다.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 말씀대로 살았습니다. 페르시아에서 이스라엘백성으로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으로 살았습니다. 그리고 모르드개가 옳았습니다. 페르시아를 크세르크세스가 다스리고, 페르시아의 법으로, 그들의 사상으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하나님이 다스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다스리시기에 모르드개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산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는 어느 세상에서 살고 있습니까? 우리가 사는 세상은 누가 다스리고 있습니까? 대통령입니까? 아니면 자본주의이니 돈이 세상을 지배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립니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그 분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바랍니다. 그 분을 주인으로 인정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사는 이곳이 하나님이 다스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간섭하십니다. 또 자신을 믿고 신뢰하는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 그런 하나님을 믿고 신뢰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 되길 소망합니다.

 

 

에스더3장설교
그때 만난 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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