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창세기 3장 1~7절
설교자: 금곡동산교회 이충만 목사
주일예배 설교문
거짓말(창세기 3장 1~7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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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그런데 뱀은 여호와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하니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이르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에게 동산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
2 |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열매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
3 |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열매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노라 하셨느니라 |
4 |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
5 |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
6 |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열매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는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 |
7 |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져 자기들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로 삼았더라 |
솔개의 비행에 대해서 들어 보셨습니까?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습니다. 솔개는 최고 약 70살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살이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고 합니다. 솔개는 약 40살이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됩니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되죠.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입니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합니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드는 것입니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게 됩니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냅니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신하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환골탈태라고 하죠.
이와 같이 우리의 삶에도 과감한 혁신, 또 그것을 위한 희생이 필요한 순간이 온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다시금 태어 날 수 있습니다. 이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좋은 이야기죠. 그리고 우리에게 도전을 주고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만드는 좋은 이야기입니다. 실제로 이 이야기를 듣고 변화되는 단체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사실... 구라입니다. 솔개는 그러지 않습니다. 애초에 그렇게 오래 살지도 못합니다. 새가 부리를 깨뜨리고 발톱을 뽑는 건 자살이죠. 사람으로 치면 턱뼈를 통째로 부수고 놔두면 자연히 재생된다는 말과 똑같습니다.
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아한 기품을 자랑하며 새하얀 백조 한 마리가 호수에 떠 있습니다. 겉보기는 한가롭지만 물속에서는... 쉴 새 없이 발을 놀리고 있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가라앉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나는 노력을 해야 한다는 얘기를 할 때 드는 교훈이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웃음이 나옵니다, 이 세상에 물에 가라앉는 물새가 어디 있습니까? 사람도 힘 빼고 있으면 물에 뜹니다.
어떤 사람이 미꾸라지가 들어있는 수조에 실수로 메기 한 마리를 넣었다고 합니다. 들어 간지도 모르고 있다가 나중에 미꾸라지 어항에 메기가 들어있는걸 발견하고 깜짝 놀랐죠. 그런데 미꾸라지들이 메기를 피해 다니느라 움직임이 빨라져서 메기가 없을 때보다 더 건강하고 오래 사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안락한 환경에 안주하는 것보다 적절한 긴장감을 가져야 더욱 분발하여 성공을 거둘 수 있다는 뜻으로 자주 쓰이는 이야기입니다. 마찬가지로... 구라입니다. 보통 포식자가 있으면 먹이동물은 건강해지기는커녕 오히려 스트레스 때문에 치명적인 영향을 받습니다, 사망률이 약 4배 정도 올라갑니다. 그러면서 이 ‘메기론’에 대해서 약자에 대한 강자의 억압을 합리화하고 그로 인한 스트레스를 미화하는 치명적 약점을 지니고 있다고 표현한 글도 있습니다. 잘 생각해 보면 말이 안 되는 이야기들인데... 우리에게 교훈을 주고, 좋은 이야기라고 하는 것이 모두 진짜는 아닌 것 같습니다. 듣기 좋은 이야기, 감동을 주는 이야기라고 옳은 이야기는 아닐 수 있습니다.
오늘 읽은 성경에는 뱀이 등장합니다. 뱀은 성경에서 처음부터 거짓말 한 자, 거짓의 아비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읽은 말씀이 그 거짓말의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릴 때는 참 아담과 하와가 미웠습니다. 선악과만 안 먹었으면 우리가 참 행복하게 살았을 텐데... 더 미웠던 사람들은 바벨탑 만든 사람들... 바벨탑 아니었으면 영어공부 안 해도 되는데... 아무튼 인류의 불행의 원흉이 된 그 사건을 오늘 살펴보면서... 이 말씀 안에서 난제라 불리는 질문들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하루는 뱀이 여자를 찾아왔습니다. 뱀에 대한 설명을 보면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했다고 합니다. 영리한데... 좀 머리를 안 좋게 쓰는 거죠. 이미 성경의 내용을 알고 있는 우리는 여기서부터 기분이 나쁩니다. 아직 저의 설교에서는 뱀이 여자에게 말을 걸지도 않았는데 여러분의 머릿속에서는 이미 유혹에서 졌어요. 이미 벌을 받고 있습니다... 뱀도 원망스럽고, 아담 하와도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다가 왜 굳이 뱀을 만들어가지고 사람이 유혹을 받게 하셨을까... 생각도 합니다.
그러면 이런 이야기를 드릴 수 있겠습니다. 사람은 왜 간교한 뱀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지 않고 그대로 방치해 두었을까요? 사람이 하나님을 대신해서 세상을 다스리고 있었는데.. 동산을 다스리면서 간악한 뱀을 쫓아내야 하는 것 아닐까요? 뱀의 성품을 본다면 마땅히 에덴동산 바깥으로 쫓아내야 하는데... 영리해서 일처리를 잘하기 때문에 두었을까요? 우리가 사람을 사귀고, 함께 일을 하는데 기준이 어떠해야 하는지도 알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야기를 더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뱀은 여자에게 다가와 속삭였습니다. 하나님이 진짜로 여기 동산에 있는 이 많은 열매들을 하나도 먹지 말라고 했니? 하나님 너무 하신 거 아니야? 여자가 이야기 하죠. 아니야. 동산에 있는 열매는 다 먹을 수 있어. 그런데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셨어. 먹으면 죽는데... 어.. 그거 먹어도 안 죽어. 너희가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선, 악을 알게 되기 때문에 하나님이 못 먹게 하시는 거야. 뱀의 그 말은 정말 여자의 마음을 잘 알아주는 것 같고, 여자를 위해서 하는 말 같았습니다. 여자가 그 열매를 보니 진짜 먹음직스럽고 탐스럽게 생긴 열매였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같아진다는 것... 그것은 선악과보다 더 달콤한 유혹이었죠. 그렇게 여자는 선악과를 먹고 남편에게도 주어서 먹게 했습니다.
어떻게 되었나요? 눈이 밝아졌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이 벗은 것을 알게 되었죠. 수치를 알고, 잘못을 알게 되어서 자신들을 무화과나무 잎으로 몸을 가렸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오셨을 때는... 하나님의 얼굴을 감히 볼 수 없어서 숨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만나서 대화하며, 함께 행복한 시간을 지냈던 사람은.. 이제 하나님 앞에 갈 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어서... 그 자리를 넘보았던 사람은 도리어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감히 함께하지 못하는 존재로 타락하고 만 것입니다. cs루이스는 “타락한 인간은 개선할 필요가 있는 불완전한 피조물이 아니라 손에 든 무기를 내려놓아야 하는 반역자라고 했습니다. 무기를 내려놓고 항복하면서 잘못했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회개입니다. 그럼에도 저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 하필 선악과를 동산 가운데 두셨을까? 사람이 유혹받기 쉽게... 그런 생각 한 번씩 안 해보셨습니까? 우리가 성경을 너무 자기중심으로 읽기 때문에 이런 생각이 드는 것 같습니다.
사실 에덴동산이 어디입니까?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하나님 대신해서 다스리는 사람이 있는 곳입니다. 하나님은 그 곳에 오셔서 사람과 함께 거하시며 교제하신 장소가 바로 에덴입니다. 그 곳에서 세상에 생명을 주는 물이 네 근원으로 흘러갔습니다. 그 근원에서는 각종 금과 보석이 나왔습니다. 생명과 축복이 에덴에서 부터 세상으로 뻗어나갔습니다. 그 중심에 에덴이 있었고, 에덴의 중심에는 두 나무가 마치 기둥처럼 자리하고 있었는데 한 나무는 생명나무이고, 다른 한 나무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였습니다. 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명확하게 알기는 어렵겠지만 이 세상을 유지하고 움직이는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런 나무가 단순히 사람을 유혹할 목적이었다고 한다면 지나치게 오해한 것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 과연 어떤 맛일지도 조금 궁금해집니다. 선악을 안다는 것이 어떤 것일까요? 우리는 선악을 알고 있을까요?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었는데, 사람들은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여전히 잘 모르는 것 같습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열매를 먹고, 분명히 하나님도 선악을 아는데 우리중 하나와 같이 되었다고 하셨는데... 선악과의 효과가 하나님처럼 무엇이 선이고 무엇이 악인지 분명하게 아는 것은 아닌 걸까요? 아니 적어도 그 기준이 하나님과 같지 않다는 것은 분명합니다. 흠... 어쩌면 하나님과 같지 않은 기준으로 선악을 분명히 아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과 다른 기준으로 선과 악을 판단하는 것이죠. 그것은 진짜 큰 문제가 됩니다. 이 세상을 하나님이 창조하셨고, 무엇이 좋고, 어떻게 하면 좋은지 하나님의 뜻대로 되어 있는데... 그 기준을 자신에게 가져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말씀하셔도 나에게 유익이 되지 않고 내 마음이 싫어하면. 나쁘다. 악하다 말합니다. 하나님이 악하다. 말씀하셔도 나에게 유익하거나 내가 하고 싶으면 좋다. 선하다 말합니다. 그렇게 하나님이 선하게 만든 세상을... 우리에게 주신 선물을 왜곡하고, 잘못 사용하게 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우리는 매일매일 선악과를 먹으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나님이 선하다 하신 것도.. 내가 싫으면 나쁘다 하고.. 하나님이 나쁘다 하신 것도 내가 좋으면 하는... 그 죄에서 돌이키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소망합니다.
사실 세상을 살다보면 유혹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대로 살면 손해가 막심하기 때문에 때로는 여러 가지 이유를 가져다 대면서 성경 말씀을 외면하기도 합니다. 성경 말씀에 상충되는 말씀을 상황에 맞게 사용해야 하는데 내 마음에 맞게 사용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보니 작은 유혹에도 넘어지고... 실수할 때도 있고.. 손해를 볼 때도 있습니다. 예전에 알바를 하고 돌아올 때 옆에서 차가 빵빵 하고 저를 불렀습니다. 백화점에 납품하시는 분이라고 하는데 어쩌다 보니 재고가 하나 남았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면서 저보고 ‘원래는 가져가야 하는데, 자기가 사회 초년생일 때 생각나서 주고 싶다고.. 부모님 가져다 드리면 좋아할 거라고’ 이야기 합니다. 수량 파악 잘못해서 남은 거 안 걸리고 뒷거래 하자는 이야기죠. 그러면 안 되잖아요. 그래도 싼 값에 부모님께 효도도 해 드릴 수 있을 거 같은 마음에.. 적당히 값을 주고 전복이랑 다른 해산물을 한 박스씩 가져 왔습니다. 집으로 가져와 보니... 박스 안은 얼음으로 가득 차있었습니다. 사기 당한거죠. 이런 경험... 혹은 다른 유혹 없으셨나요? 이런 일이 있으면 저는 문득 그런 생각도 듭니다. 제가 잘못했고, 제 실수로 손해를 본 것은 아는데...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데... 이럴 때 개입해 주시면 좋았을 텐데.. 하나님은 함께 하시면서 왜 가만히 두셨을까... 뭐 몇 만원 손해야 그럴 수 있지만.. 선악과를 먹는 이런 상황에서는 하나님은 어디 계셨을까요... 우리가 넘어질 때... 주님은 어디 계십니까... 주님은 선악과를 먹을 때 왜 내버려 두셨습니까? 그런데.. 사실 이렇게 이야기 하면서도 잘 생각해 보면 하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제가 스스로 돌이킬 수 있도록 도와 주셨습니다. 스스로 돌이킬 수 있도록.. 강제가 아니라 스스로... 그리고 경험상... 그렇게 개입하셔도 고집대로 밀고 나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뭔가 불길한 예감이 들고, 일이 틀어진다든지, 현금인출기가 주변에 없다든지 하면.. 그냥 넘어가야하는데 아쉬워서 편의점까지 가서 수수료까지 내면서 굳이 삽니다. 마음이 이미 유혹에 넘어간 것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이미 유혹에 넘어갔기 때문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막으시면... 다음 기회를 노릴 뿐입니다. 한동안은 잠잠하겠죠. 시간이 지난 후에 그 마음은 다시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은 아담과 하와를 끝까지 사랑하셔서 믿어주신 것은 아닐까... 사랑과 믿음이 어떻게 떨어지겠습니까.. 사랑하시니 믿어준 것입니다.. 알면서도.. 그 순간까지 끝까지 믿어 주셨습니다. 일일이 간섭하고 감시하신 것이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믿어서 전부 맡겨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이 사랑과 신뢰는 방치와 다릅니다. 사람이 타락해서 끔찍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그 대가를 스스로 감당하시기 위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시기면서 까지 믿어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진짜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사람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하나님은 이런 분이십니다. 선악과 사건에서 나온 여러 가지 생각에 대해서 이야기 해 봤습니다. 오늘의 말씀이 하나님에 대해서 원망하거나 오해하는 것을 없애는데 조금의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짚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뱀이 무슨 거짓말을 했나요? 뱀이 여자를 뭐라고 속인 걸까요? 뱀이 뭐라고 했죠? 먹으면 눈이 밝아져 하나님과 같이 된다. 창세기 3장 22절에 나옵니다.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와 같이 되었으니...” 사실입니다. 죽지 않는다고 했죠. 여자... 안 죽었습니다. 안 죽었으니 남편에게도 줬죠. 오히려 여자가 말을 잘못한 것은 보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동산 중앙에 있는 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다고 하죠, 먹지 말라고 했는데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했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죄를 짓지 않게 하려고 죄가 아닌 것까지 조심하고 못하게 하는 것이 도리어 역효과가 나지 않았나는 생각도 좀 듭니다. 말씀대로... 동산 중앙에 잇는 두 나무 중에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열매를 먹지 말라고 했는데... 중앙에 나무에 손도 대지 않으려고 하는 것.. 말씀이 하라는데 까지만 이야기해야 하는 것이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뱀은 거짓말 하나 하지 않고 여자를 속였습니다. 마치 선악과를 먹으면 하나님의 자리에 오를 수 있는 것처럼 이야기 했죠. 실제로 하나님과 같이 선악을 분별하게 되었습니다. 무엇이 선이다. 악이다. 판단하게 된 것이죠. 다만 하나님의 지혜는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렇기에 그 판단은 잘못된 판단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당장 죽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 대항함으로 영원한 생명을 잃어버리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 보다 가장 큰 거짓은 사람이 하나님을 오해하도록 만든 것입니다.뱀의 진짜 거짓말은 하나님을 오해하게 한 것입니다. 뱀은 마치 하나님이 사람을 억누르는 존재인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동산의 수많은 열매가 있는데 그것을 먹지 못하게 하는 존재. 자신과 같은 자리에 올라올까봐.. 사람이 더 높은 자리로 오르지 못하도록 선악과를 먹지 못하게 한 것처럼 이야기 했습니다.
사실은 사람을 위해서 수많은 열매를 만들어 주신 분인데... 뱀이 여자를 속인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오해였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잘못 생각했기 때문에 그 억압을 벗어나 자유롭고 싶은 것입니다. 선악을 스스로 분별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을 잘못 생각하기 때문에 왜 하필 뱀을 만드셨느냐 원망합니다. 왜 하필 선악과를 만드셨느냐 원망합니다. 고작 열매하나 먹은 게 뭐 그리 큰 죄라고 원망합니다. 아담이 잘못한 걸 왜 우리까지 고통당해야 하는지 원망합니다. 하나님은 그 때 대체 어디 계셨습니까? 원망합니다. 수많은 난제들은 하나님을 오해하기 때문에.. 잘못알기 생긴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도 뱀의 속삭임에 속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원망합니다. 뱀의 거짓은 바로 하나님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속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좋은 분입니다. 이 우주의 절대적인 선. 그런 개념을 뛰어 넘습니다. 우리 개개인에게.. 가장 좋으신 분입니다. 그 분의 인도하심이 나에게도 가장 유익한 길입니다. 수많은 선택지 중에 하나님의 뜻을 고르지 못하면 벌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시고... 우리를 끝까지 믿고 사랑해 주시는 분입니다. 좋은 선택을 하면 그로 인해 복을 주시고, 혹 잘못된 선택을 하면 그로 인해서 성숙하게 만들어 주십니다.
우리를 향한 그분의 섭리는 숨 막히게 아름답습니다. 우리를 완성하시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으십니다. 단 한차례의 실수 없이 그것은 이루어 질 것입니다. 때로 우리는 실수하고 넘어지지만 하나님은 그까지도 우리의 유익으로 바꾸실 위대한 계획을 가지고 있으십니다. 그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나의 인생을 그 분께 맡겨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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