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요한복음 12장 12-16절 (개역한글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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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
그 이튿날에는 명절에 온 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
13 |
종려나무 가지를 가지고 맞으러 나가 외치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이 곧 이스라엘의 왕이시여 하더라 |
14 |
예수는 한 어린 나귀를 만나서 타시니 |
15 |
이는 기록된바 시온 딸아 두려워 말라 보라 너의 왕이 나귀새끼를 타고 오신다 함과 같더라 |
16 |
제자들은 처음에 이 일을 깨닫지 못하였다가 예수께서 영광을 얻으신 후에야 이것이 예수께 대하여 기록된 것임과 사람들이 예수께 이같이 한 것인줄 생각났더라 |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하나님의 축복이 풍성하게 임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그 이튿날'. 니산월 10일로 베다니에서 잔치가 있었던 다음날, 즉 주일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셨습니다. 그 후 교회는 이 날을 기념하여 종려 주일로 지키고 있습니다. 종려 주일이라 함은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연도에 늘어선 무리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길바닥에 깔고 또 가지를 흔들며 예수를 환영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인 것입니다. '종려나무'는 야자과에 속하는 6m 높이의 열대 식물로 그 열매는 기름을 짜서 공업 원료로 사용 된다고도 합니다. 복음서 에서는 본서에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나무는 강건한 생명력과 우람한 자태를 갖고 있어서 대개 존경과 찬양을 돌릴 때 사용되었습니다. 오늘의 성경에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 장면이 다른 복음서에 비해서 간략하게 언급되어 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의 예루살렘 입성은 성경의 예언을 성취하는 것임을 부언 하고 있습니다. 사실 오늘의 성경 구절은 유대 민족의 명절을 며칠 앞둔 어느 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온 나라 안의 사람들과 각국에서 온 순례자들이 주님을 열렬히 환영한 사실을 증거 한 내용입니다. 이것을 기억하십시오. 요한복음은 복음서 처음부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때'를 의도적으로 암시해 왔습니다. 그리고 그때가 유월절 명절을 맞아 점점 가까이 다가옴을 드러내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도 유월절 '하나님의 어린양'이 십자가에서 대속의 희생을 하시려고 '예루살렘…양문'으로 들어오시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분은 사실 인류를 위해 희생당하시려고 오시는 예수 그리스도 그가 바로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임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 합니다.
'그 이튿날…큰 무리가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오신다 함을 듣고' 예수님을 맞으러 나갔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큰 무리'들의 환영을 거절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전에는 의도적으로 '큰 무리들의 환영'을 피하셨습니다. 지금 예루살렘 입성을 맞아서는 공개적으로 자신의 위치와 의도를 만인들에게 밝히고 무리들의 환영을 허용하셨습니다. 이와 같은 태도는 결코 모순 된 것이 아닙니다. 그 큰 무리 중에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려고 각국에서 온 순례 객도 있었던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의 뜻을 '온 유대와…땅 끝까지' 알릴 수 있는 분위기와 때가 온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이때를 위하여 신중하게 기다려 왔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유익과 영예를 나타내는 일에는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게 하셨지만 하나님 아버지의 영광과 그 계획을 나타내는 일은 '집 위에서 전파'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주신 삶의 모든 기회를 신앙 안에서 재 인식해야 합니다. 그래서 모든 기회를 오직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사명을 나타내는 일에 사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원을 받은 사람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지금 구라파는 엉망이 되어가고 있답니다. 그곳의 나라들은 본래 야만인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이고 살게 되니 세계의 선진국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예수님의 이름을 잊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니 지금 위기를 만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알리는 것이 종려 주일의 일임을 믿으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를 사용한 한 분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인도 선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긴 스탠리 존스는 인도에서 복음 전하는 일에 평생을 바친 분입니다. 그는 89세에 뇌일혈로 반신불수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강제로 보스턴에 있는 병원에 입원 시켰습니다. 그는 치료를 받으면서 자기 병실에 들어오는 모든 의사들에게 “의사 선생님, 나에게 이렇게 말해주시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걸어라’고 명해주시오”라고 부탁했습니다. 여러 번 거듭해서 부탁하자 치료하러 들어오는 의사들 마다 어색하게나마 그에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스탠리야 걸어라”고 말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간호사에게도 똑같은 부탁을 했습니다. 스탠리는 그럴 때 마다 대답했습니다. “아멘!” 놀랍게도 스탠리는 6개월 만에 기적처럼 병상을 박차고 일어나, 90세의 고령에 또 다시 인도로 선교를 떠났다고 합니다. 예수님 이름의 권능을 믿으십시오. 그리하면 초자연적인 이적을 경험합니다. 개인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구원을 받습니다. 사회가 그 이름을 부르면 사회가 구원을 받습니다. 나라가 그 이름을 부르면 나라가 구원을 받습니다. 경제가 회복됩니다. 문제가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행복이 밀려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그 이름에는 치유의 힘이 있습니다. 회복의 은혜가 넘칩니다. 할렐루야!
또한 예수님께서 공개적으로 입성하신 사실 속에서 인류를 위해 희생하시고 구원하시려는 의지를 가지고 십자가를 향하여 행하셨습니다. 한때는 예수님께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모함과 살의를 피해서 '숨어나갔습니다. 물론 예수님은 능히 불의한 세력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날려 버릴 수 있는 지혜와 힘을 소유하셨습니다. 하지만 진리 되신 하나님 아버지의 인류 구원의 대업의 뜻을 위해 때를 기다리신 것입니다. 드디어 오늘의 성경에는 드디어 이제 자신의 위험함을 아랑곳하지 않으시고 군중들의 환영을 허용하고 자기를 죽이려는 원수들의 목전에 적극 드러내시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지기 전의 예수 그리스도에게 꿈이 있었다면 바로 자기 자신을 유월절 어린양으로, 인류를 위해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 유일한 소망이요 삶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이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어쩔 수 없는 환경에 의해 힘없이 십자가에 처형되셨다고 생각하는 것은 무지한 생각입니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의 의미는 이와 같이 자원하는 십자가를 향하신 희생 목적의 입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입성을 승리의 입성이라고도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의 현세적 삶의 의식은 '얻고, 누리고, 높임과 봉사만 받으려는 것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성도들의 삶은 곧 '제사적인 성격의 삶'임을 인식해야 합니다.
유대의 온 군중들은 전장에서 개선하는 왕을 맞이할 때 사용하는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이스라엘의 왕'이라고 예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그들 중에는 전에 하나님의 나라를 주시겠다는 예수님의 제의를 외면했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것을 보고는 전보다 더 열렬하게 주님을 맞았습니다. 이제 죽은 자를 살리신 그 능력이라면 살아 있는 민족의 원수들인 로마 군대도 멸절 시키고 예루살렘 성전에서 영광스러운 민족 독립 기념일을 선포하실 것으로 알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이 세상이 원하는 임금이 아님을 분명히 하시고, 또 '저희를 떠나' 숨으셨습니다. 그러자 며칠이 못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군중들은 외쳤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현세의 행복에서 소외된 자들에게도 관심을 가지십니다. 그렇지만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것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진리 안에서 소외된 자들을 위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의 상징인 '어린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연유도 결국 예수님의 나라의 성격을 분명하게 보이신 것입니다. 오늘 많은 사람들은 입으로 찬양하기는 합니다. 어쩌면 이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하지만 성경은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종려주일“십자가를 향하신”예수님을 본 성도들은 예수님께만 영광을 드려야 합니다. 그뿐만 아니라 찬양을 많이 불러야 합니다. 그리고 입술의 찬양도 중요하지만 온 맘을 다하여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찬양은 온 몸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날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면 영혼과 육신과 가정과 사회와 나라가 구원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이름의 권세가 힘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려주일 십자가를 향하신”예수님을 묵상 하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생활을 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의 구원 역사가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활에 그리고 이 나라에 풍성하게 임할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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