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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하여 주시는 행복 (요한복음 10장 7-18절)

설교 모음/이병용 목사 설교

by Hope103 2019. 1. 7.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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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더하여 주시는 행복

설교 본문: 요한복음 10장 7-18절 (개역한글판)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10

도적이 오는 것은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12

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

13

달아나는 것은 저가 삯군인 까닭에 양을 돌아보지 아니함이나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16

또 이 우리에 들지 아니한 다른 양들이 내게 있어 내가 인도하여야 할터이니 저희도 내 음성을 듣고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에게 있으리라

17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시는 것은 내가 다시 목숨을 얻기 위하여 목숨을 버림이라

18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으니 이 계명은 내 아버지에게서 받았노라 하시니라


더하여주시는 행복 

요한복음 10:7-18

(금곡동산교회 이병용 목사 설교문)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에 하나님의 풍성한 은혜를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요10:8,9“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예수님께서는 자신보다 먼저 온 자들은 모두 절도와 강도로서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오는 자들이라고 하셨습니다. 저들은 선하게 보일지라도 결국은 사람들의 생명을 도적질하고 죽이고 멸망 시키려는 것 뿐입니다. 또한 자기도 자신에게 속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목자의 탈을 쓴 거짓 목자가 있고, 삯꾼들도 있고, 심지어 절도와 강도도 섞여 있어서 분간하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그들은 그럴듯한 말로 꾸미고 자기를 선하게 나타냅니다. 하지만 그들의 끝을 보면 가짜인지 압니다. 이러한 시대에 예수님은 생명을 주시되 더하여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은 “더하여주시는 행복”이라는 주제를 통하여 축복을 받기를 원합니다. 할렐루야!


  1. 절도와 강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는 것입니다.

  요10:1“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문을 통하여 양의 우리에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라고 하셨습니다. 오늘의 말씀은 현실에서 겪을 수 있는 실감나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는 날이 갈수록 재물과 생명을 빼앗아가는 절도와 강도가 극성을 부리고 있습니다. 남몰래 담을 넘어 들어와 도적질하고 돈 때문에 사람을 죽이고 훔쳐가는 일이 많이 일어납니다. 이런 사건들을 보니 절도와 강도가 드는 것은 사람을 해치고 돈을 빼앗기 위해 오는 것입니다. 인류의 시조인 아담과 이브가 살던 에덴동산에서도 문으로 들어오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들어온 강도가 있었습니다. 그 강도가 바로 뱀인 사탄이었습니다. 그 사탄은 에덴에 들어와 하와와 아담을 유혹하여 하나님께 불순종의 죄를 범하게 하여 인류를 타락케 하였습니다. 


  2. 예수님만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목자이십니다.

  사44:24“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지은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홀로 하늘을 폈으며 나와 함께 한 자 없이 땅을 펼쳤고”예수님보다 앞서 온 수많은 종교창시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인류에게 구원의 길을 보여 준다며 별의별 종교적 의식과 철학을 가르쳐 왔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가르침은 인간의 인본주의적 노력에서 생겨난 결과이지, 결코 하나님의 특별 계시에 근거한 복음은 아니었습니다. 사44:6“이스라엘의 왕인 여호와, 이스라엘의 구원자인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나는 처음이요 나는 마지막이라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그러므로 인간이 제아무리 노력하여도 스스로 구원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찾았다고 하는 생명의 길은 모두 허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길을 가는 자는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말았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요14:6“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하나님의 아들로서, 하늘의 복음을 가지고 도성 인신하신 독생자만이 우리에게 참된 복음을 보여 주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만이 생명의 문이므로 그 문으로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인생의 참 행복을 더하여주시는 목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1:4“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1:10“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진리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은 아직도 참 빛을 깨닫지 못하고 있습니다. 요1:11“자기 땅에 오매 자기 백성이 영접하지 아니하였으나”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의 주인이심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요1:12“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님이시요 하나님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영접 하기만 하면 영접한 그 사람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이십니다.


  3. 예수 그리스도만이 구원의 문입니다.

  행2:21“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하였느니라.”세상에는 구원을 약속하는 수많은 진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특별 계시인 성경에 근거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구원하는 참 진리가 아닙니다. 행4:12“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예수 그리스도의 이름만이 구원 받게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외에는 다른 이름은 없습니다. 


  4.  사람은 누구나 종교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죄로 인하여 단절된 사람이 영원을 향한 갈망이요, 인생의 본향을 잃은 인간의 향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인간의 사이에는 죄가 가로놓여 있어서 본 향을 찾을 길이 막막한 것입니다. 거기에서 종교성이 생겨났습니다. 어떻게 하면 영원하신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까? 생명의 주인이신 그 하나님만 만나면 모든 것이 해결될 터인데 그 방법이 무엇일까를 생각하다가 스스로 깨달았다는 진리가 바로 '종교'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이 깨달은 길, 그들이 만난 것은 모두 허상에 불과합니다. 그들이 가는 길은 결국 그 종국이 멸망에 이르고 마는 것입니다. 요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진실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 길이요, 참 진리요, 참 생명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더하여 주시는 행복”을 받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면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십시오. 그리하면“더하여주시는 행복”은 시작됩니다.


  5. 생명을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는 예수님 

  요10:10“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하려는 것이라 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오신 목적은 당신을 믿는 자들에게 엄청나 축복을 주시기 위함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그러므로“더하여주시는 행복”을 주시려고 이 땅에 오신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흐르는 명백한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복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아담과 하와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노아와 그의 자녀들에게 복을 주시며 가라사대 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시면서 창12:1-3“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2.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찌라 3.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하신지라”아브라함에게는 복을 주신다고 하시면서 한 단계 높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복의 근원이 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억만 죄악에서 구원하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우리들에게 내어주셨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으면 생명을 얻되 풍성히 얻고 넘치는 축복을 주신다고 하십니다. 이 시간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을 믿고 그분을 여러분들의 구주로 영접하십시오. 그러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 라고 하신 주의 약속이 성취되어 여러분들의 삶이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가 잘되고 강건한' 축복이 임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너무나 잘 아는 구약의 성도인 야베스는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역대상4:10 “야베스가 이스라엘 하나님께 아뢰어 가로되 원컨대 주께서 내게 복에 복을 더 하사 나의 지경을 넓히시고 주의 손으로 나를 도우사 나로 환난을 벗어나 근심이 없게 하옵소서 하였더니 하나님이 그 구하는 것을 허락하셨더라.” 예수님을 여러분의 개인의 구주로 마음에 진실로 모신 성도들에게 야베스의 행복이 반듯이 분명히 기필코 임하실 것을 믿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6. 선한 목자의 의지

  1) 선한 목자 비유의 의미

  당시 유대 사회는 농업과 함께 목축업이 산업의 주류였습니다. 사도요한이 활동할 당시에는 계1:11“가로되 너 보는 것을 책에 써서 에베소, 서머나, 버가모, 두아디라, 사데, 빌라델비아, 라오디게아 일곱 교회에 보내라 하시기로”나오는 도시들도 같은 구조였습니다. 이들 지역에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벧전1:1“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 본도, 갈라디아, 갑바도기아, 아시아와 비두니아에 흩어진 나그네”흩어진 나그네로서 고통을 받았습니다. 계 3:10“네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또한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당시의 성도들은 로마 제국과 유대교로부터 극심한 환난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환난을 미리 아시는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선한 목자임을 나타내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히13:5“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 그가 친히 말씀하시기를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고 위로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요9:5“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에는 세상의 빛이로라”예수님을 '빛'으로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요10:15“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성도들을 향한 지극하신 사랑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님께서 성도와 주님의 관계를 묘사하되 나타난 말씀의 사랑을 강조하였습니다. 선한 목자의 특성은 어떤 상황, 어떤 시대적 영향력에서도 결코 양떼를 버리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계3:11“내가 속히 임하리니 네가 가진 것을 굳게 잡아 아무나 네 면류관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의의 빛을 찾아볼 수 없는 칠흑 같은 어두움 중에 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여 신앙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도리어 예수님의 사랑을 굳게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2) 선한 목자의 은혜

  요10:11“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마20:28“인자가 온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양을 위해 목숨을 주신다.'는 것이 목자이신 예수님의 무한한 은혜입니다. 이것이 바로 변함없는 하나님께서 성도들은 향한 의지입니다.


  롬8:32“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라고 했습니다. 사랑하는 동산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때로는 세상의 불의의 압력과 죄악의 유혹과 생활의 문제 때문에 신앙의 길에서 실족하지 마십시오. 요21:12“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님의 제자들이 신앙의 위기를 만나 낙심하여 있을 때에 다시 찾으시고 위로하시는 예수님을 보십시오. 그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들에게도 동일하게 위로하십니다. 


  5. 삯꾼들의 의식과 폐단

  ① '삯꾼은 목자도 아니요'

  요10: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물론 이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사명'이 결여된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현상을 묘사하신 것일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악한 목자'라고 아니하시고 '삯꾼'이라 하신 것에 눈을 두십시오. 예수님 당시는 목자를 천직으로 아는 이들과 또 '임시 고용인'이 있었습니다. 임시 고용인이 모두 악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사명 의식이 없다는 것입니다. 참 목자처럼 양떼들과 생명적 관계가 아니라 물질적이며, 상대적인 관계 의식을 가지고 있습니다. 제가 아무리 힘들어도 포기를 하지 않는 것은 참 목자로 가는 길이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② 일반적인 상황에서는 알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절박한 위기가 닥치면 상대적으로 삯꾼들은 자신의 안녕과 유익을 구합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성직이 직업화, 다원화되어가는 오늘날 목사님들의 외적으로 나타난 것보다도 진정 예수님께로부터 목자의 사명을 받은 목사님을 만나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요10: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삯꾼 목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반면에 삯꾼 신자들도 있다고 했습니다. 딤후4:3-4“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4.또 그 귀를 진리에서 돌이켜 허탄한 이야기를 좇으리라”잘못된 가치와 취향만을 추구하는 삯꾼신자들도 있었습니다. 딤후3:6-7“저희 중에 남의 집에 가만히 들어가 어리석은 여자를 유인하는 자들이 있으니 그 여자는 죄를 중히 지고 여러가지 욕심에 끌린바 되어 7.항상 배우나 마침내 진리의 지식에 이를 수 없느니라.”그들은 결국 삯꾼 목자를 만나게 되고 멸망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6. 성도들의 응답

  1) 성도들의 자세

  요10:12“삯군은 목자도 아니요 양도 제 양이 아니라 이리가 오는 것을 보면 양을 버리고 달아나나니 이리가 양을 늑탈하고 또 헤치느니라.”고 하신 것은 양의 자세를 강조하신 말씀입니다. 행15:1“어떤 사람들이 유대로부터 내려와서 형제들을 가르치되 너희가 모세의 법대로 할례를 받지 아니하면 능히 구원을 얻지 못하리라 하니”라는 말씀과 같이 예나 지금이나 잘못된 교리를 전파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분별력을 가지고 오직 목자 되신 그리스도의 말씀과 언약에 순종과 믿음으로 좇아야 합니다. 그래야 더하여주시는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할렐루야!


  2) 성도들의 의무

  양들은 힘이 없는 동물입니다. 다만 자기 자신을 목자와 이웃에게 제공함으로써 그 의무를 다하는 동물입니다. 즉 젖과 살코기와 양모입니다. 털깎기를 거부하는 양은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털을 안 깎으면 엉키고 더러워져 벌레가 생기고 자신의 목숨까지 위협 받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성도는 받은 은혜를 이웃에게 제공하며 살아야 행복합니다. 사랑하는 동산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이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므로“더하여주시는 행복”을 풍성하게 받으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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