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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 (이사야 53장 1-6절)

설교 모음/이병용 목사 설교

by Hope103 2018. 10. 1. 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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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

설교본문: 이사야 53장 1~6절 (개역한글판)

1

 우리의 전한 것을 누가 믿었느뇨 여호와의 팔이 뉘게 나타났느뇨

2

 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의 보기에 흠모할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3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오늘은 참으로 좋은날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 동산 교회 성도 여러분들의 가정과 생업과 자녀들에게 풍성하게 넘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예수님을 예언한 구약 성경 이사야 53장을 “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라는 제목을 정했습니다. 오늘의 내용은 많은 사람들이 별로 좋아 하지를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람들의 본능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잘 듣고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하면 축복입니다. 사실 사람들은 영광스러운 모습을 원하는 데 성경은 초라하게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시는 예수님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53:6“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람들의 죄의 짐을 지고 죽으셨다는 예수님을 반갑게 맞이할 수만은 없다는 것입니다. 그뿐만 아니라 사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께서 주 앞에서 자라났다는 말씀은 그가 여호와 하나님의 돌보심을 받으며 성장했음을 의미합니다만 연한 순이란 죽은 나무처럼 보이던 것이 여전히 살아 있음을 나타내고 있는데, 이러한 연약한 표현이 사람들의 마음에는 기쁘지 않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모습을 깨닫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여호와의 종이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 사역을 담당하였음을 의미하는 표현을 최상의 것으로 받고 구원에 대열에 함께 서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마른 땅'이란 '부패한 시대의 완악한 심성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을 의미합니다. 여호와의 종은 그러한 악한 시대에 뿌리를 내리고 자신의 사역을 어렵지만 분명한 의지로 수행하였습니다. 성령 안에 있는 성도라면 조금도 의심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삶에 대한 예언임을 확신하고 믿어지는 진리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그 모든 예언이 이루어졌고 그 예언이 적용되어지는 가운데에도 끝끝내 불신앙의 태도를 고집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슬픈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하는 동산교회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은 진리에 대한 분별력을 더욱 공고히 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합니다. 할렐루야!

  1. 고운 모양도 없고

  53:2“그는 주 앞에서 자라나기를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그는…마른땅에서 나온 뿌리'같다고 했습니다. 이는 폭우에 휩쓸린 것인지 아니면 풍화작용으로 드러난 뿌리인지는 모르지만 등산하다보면 길가에 나온 보기가 흉한 나무의 뿌리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사람들이 볼 때에 위대한 역사적 배경을 가진 나라에서 태어난 것이 아닙니다. 이미 몰락한 유대의 다윗 왕조의 이름 없는 후손에게서 탄생하신 것입니다. 또 그 당시 유대는 로마에 주권을 빼앗긴 상태였습니다. 거기다가 예수님의 고향이라고 칭하는 곳은 요1:46‘나다나엘이 이르되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날 수 있느냐 ’'천박한 사람들의 동네'로 취급받고 있던 나사렛입니다. 또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든 이유는 행4:13“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예수님의 제자들조차도 '일자 무식꾼'취급을 받는 갈릴리 어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예수님께서 세계 역사에 가장 취약한 장소인(사9:1‘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라고 말씀한 이러한 갈릴리 나사렛을 배경으로 삼으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1)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되 가장 소외 받고 고통당하는 이들부터 구원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갈릴리의 나사렛 동네는 가장 무시되고 핍박받고 고통당하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직 하늘만을 바라볼 수 있는 종교성이 강한 사람들입니다.


  2) 심판입니다.

  고전1:27“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그 당시나 지금의 세상의 좋은 문화 가운데서도 배척당하던 무식하고 천박한 이들은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까닭에 풍성한 지혜와 배경을 지닌 사람의 불신앙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핑계 댈 수가 없습니다. 스스로 지혜롭다고 여기는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전통과 힘과 지혜를 더 의지하고 자랑하는 이들을 마지막 심판 때 저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한 것입니다. 


  2. 멸시를 받아서

  예수님은 초라한 모습과 보잘것없는 용모를 가지고 있었든 것 같습니다. 사53: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요8:57“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오십 세도 못 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더더구나 예수님께서는 가문이나 명예 등 사회적 강점도 없었습니다. 지금이나 그때나 유대인들은 전 세계적으로 상종하기 싫은 민족입니다. 저들은 바벨론 문명이나 그리스 문화처럼 인간의 아름다움을 추구하지를 못했습니다.  


  다시 들어가는 말

  종교가 무엇인가 생각을 해봅니다. 오늘날 종교는 무시를 당하고 있습니다. 물론 종교인들인 잘못을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종교인이든 아니든지 종교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종교의 사전적인 뜻은 이것입니다.

  종교(宗敎)는 초자연적인 절대자의 힘에 의존하여 인간 생활의 고뇌를 해결하고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추구하는 문화체계라고 기록이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기독교를 무시합니다. 절대자이신 하나님을 알려고도 안합니다. 도리어 사람들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따라 거의 모든 사물을 대하기도 합니다. 오늘날도 자신의 욕구만을 채우려고 신앙의 길을 가다가 교회를 떠나가는 이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먼저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구속의 진리를 듣고 순종해야 하나님의 영광을 볼 수가 있는 것입니다. 요11:40“예수께서 이르시되 내 말이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하지 아니하였느냐 하시니”이것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매력을 옷 입지 않으신 까닭입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은 벧전3:4“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진실한 성도라면 신앙적경건과 올바른 도덕을 삶의 벗으로 삼아야합니다. 사막에서 길을 잃은 사람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물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죄악으로 죽어 가는 인생들이 영생을 얻는 데 장애가 되고 방해가 되는 거추장스러운 것들을 버린 것입니다. 


  3. 멸시를 당하였고

  예수님은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같이 멸시를 당당했다고 했습니다. 사53: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이 의미는 범죄자, 전염병자, 실패자처럼 고독하고 배척당하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인간들은 눈에 보기에 좋은 것을 좋아합니다. 모든 인본주의 사상과 종교 원리는 바로 이 점을 추구합니다. 그들 모두는 '인간의 행복'을 이상향으로 감히 내세웁니다. 이것이 나쁘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추구하는 모든 진리는 허구였고 결국 사람들을 지옥으로 끌고 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직 '하나님 나라의 영광'을 슬로건으로 삼으셨습니다. 또 그것을 위해 마10:38“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자기처럼 십자가의 고난을 거쳐야만 한다고 하셨습니다. 딤후 3:4“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이 말씀은 순간적인 쾌락이나 즐거움 등을 나의 삶의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알고 이것을 추구하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뒤따르려는 이들은 진리에 이르지 못할 것입니다. 


  4. 귀히 여기지 않고

  사53:3“그는 멸시를 받아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이 그에게서 얼굴을 가리는 것 같이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는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이것은 저들이 진리를 모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행복의 가치는 사람들의 눈으로 보인 것들이 전부가 아닙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그 어떤 무엇이 곧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이 믿는 사람들로 하여금 진정한 행복으로 인도합니다. 


  5. 대속의 효과와 결과

  1) 대속의 효과는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손과 발 머리 그리고 허리에 못과 창에 찔리심은 사람들의 허물이 원인이라는 것입니다. 사53:5“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허물과 죄악의 사전적인 뜻은 성격‧ 습관‧ 도덕상의 잘못, 착각에서 오는 잘못, 악의 없는 판단의 잘못, 과실의 책임이라고 합니다. 이러한 사전적인 의미가 거의 모든 사람들에게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허물과 죄악으로 말미암아 예수님은 찔리고 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과의 평화를 가지고 왔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맞은 채찍이 성도들을 치료합니다. 사53:5‘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예수님께서 채찍에 맞음으로 말미암아 여러분들의 온갖 질병이 치료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치료되어라!


  2) “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자신의 허물과 죄악을 친히 담당할 사람은 없습니다. 인생들이 결단코 깨달아야 하는 것은 자신은 죄인이라는 것입니다. 사53:6“우리는 그릇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많은 이들이 철학을 통하여 명상을 통하여 깨닫는 것은 자신들이 추악한 죄인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포장을 합니다. 자기가 깨달았다고 하면서 사람들을 미혹을 했습니다. 저들이 진실로 깨달았다면 그렇게 말 못합니다. 사람은 스스로 이 죄의 문제를 해결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답답하게 살다가, 괴롭게 인생을 살다가 지옥으로 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의 예수님을 만나므로 말미암아 이러한 진리를 깨닫는 사람들은 이 은혜에 감격하여 인생을 허투루 살지를 않습니다. “대속하시는 어린양 예수님”을 따라 자신들도 인생을 예수님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을 만난 사람들은 이 놀라운 진리를 발견하고는 안일이나 편의를 뒤로한 채 영광의 복음전파를 위해 오지에서 자신의 일생을 보내고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아! 그렇습니다. 이 놀라운 선교의 열매를 대한민국 우리나라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대한민국의 전신인 조선에 왔던 파란 눈의 많은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 조선 산하를 적시었습니다. 먼저 믿은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목숨 걸고 신앙을 하였기에 오늘의 결과가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로 오늘 지금 저와 여러분들에게까지 이 영광의 복음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대한민국 우리나라는 그 영광의 복음을 세계 여러 나라에 전하는 나라와 민족으로 세계 속에 우뚝 나타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믿음의 참 가치는 외모가 아닙니다. 믿음의 사람이라면서 외형만 본다면 결국은 예수님도 배척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볼 때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을 닮아가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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