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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오신 목적(마가복음 10장 45-52절)

설교 모음/이병용 목사 설교

by Hope103 2018. 10. 18. 0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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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제목: 예수님이 오신 목적


설교 본문: 마가복음 10장 45-52절 (개역한글판)

45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46

그들이 여리고에 이르렀더니 예수께서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나가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인 맹인 거지 바디매오가 길 가에 앉았다가

47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

48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

49

예수께서 머물러 서서 그를 부르라 하시니 그들이 그 맹인을 부르며 이르되 안심하고 일어나라 그가 너를 부르신다 하매

50

맹인이 겉옷을 내버리고 뛰어 일어나 예수께 나아오거늘

51

예수께서 말씀하여 이르시되 네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원하느냐 맹인이 이르되 선생님이여 보기를 원하나이다

52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하시니 그가 곧 보게 되어 예수를 길에서 따르니라



예수님이 오신 목적 

마가복음 10:45-52

 오늘은 참으로 좋은 날입니다. 이 좋은 날“예수님이 오신 목적”이라는 제목의 말씀으로 은혜를 나눌까? 합니다. 제자들이 서로 높은 자 되기를 다투고 있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왜 자신이 세상에 오셨는가에 대해서 가르쳐 주심으로 제자들의 어리석음을 책망하십니다. 제자들의 행동을 통해서 명예심에 눈이 어두워진 현대의 성공주의자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이 추구하는 것과 정반대의 행동을 취해야 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1. 섬기러 오심

  예수께서는 막10:45'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는 말씀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영광스러운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것을 소망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신이 섬기러 오셨다고 말씀하심으로 그들의 생각이 잘못된 것이었음을 지적해 주셨습니다.


  1) 마구간에서 태어나심

  예수님께서 섬기러 오신 것은 그분의 출생에서 부터 시작됩니다. 하나님의 높고 높은 보좌를 버려두고 친히 종의 모양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십니다. 그것도 마구간에서 태어나십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왕궁에 태어나시거나, 또는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다 해서 그것이 구원 사역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시작부터 지극히 겸손한 종의 모습을 취하셨습니다. 초라한 마구간, 냄새나는 마구간 그곳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처음 대하셨던 환경이었습니다. 예수님은 목수인 아버지 요셉을 도와서 자신도 목수로서 삼십 년을 보내셨습니다. 성도들이여 남 보기에 자랑스럽지 못한 직업을 가졌다고 낙담하거나 낙심하지 마십시오. 우리들에게 맡겨진 각자의 일들을 통해서 남을 섬기는 종의 도를 몸소 실현하고 있다는 생각이 바람직한 직업관입니다. 


  2)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

  예수님의 섬기심의 실제적인 교훈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행동에서도 잘 나타납니다. 보통 나라 옛날의 풍습은 하인이 주인의 발을 씻기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친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심으로 자원하여 그들의 종이 되신 것입니다. 스승의 위치를 버리고 종의 위치까지 스스로 낮아지신 예수님에게서 진정한 겸손을 알고 여러분들도 그러한 자세로 세상을 살아가십시오. 신앙 생활에서 자신의 체면을 세우기 위해 스스로 높아지려는 행위는 참다운 신앙인의 태도가 아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친히 제자들의 발 씻김을 통해서 여러분들은 봉사의 모범을 배우고 그 길을 가야 합니다. 예수님은 섬김을 받기 위해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성도는 남을 섬기는 기쁨을 체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대접을 받기 위해 궁리해서는 안 됩니다. 오히려 베풀고 높여 주기 위해 애써야 합니다. 나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받들어 섬기는 제자의 길을 동산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이 가야 할 길입니다.


  2. 대속물로 구원하러 오심

  예수님은 막10:45'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려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대속물이란 원래 노예를 속량시켜 주기 위해 지불하는 대가를 말합니다. 벧전 1:18, 19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은 세상의 모든 금은보다 가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출 21:30의 예언대로 우리들은 죽음에서 살림을 받았습니다. 마 26:28에 의하면 죄에서 용서를 받는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여러분들을 사랑하심으로 십자가의 수고와 고통을 담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동산 교회의 성도 여러분들의 예수님에 대한 충성 역시도 자발적인 순종이어야 합니다. 순종은 자발적일 때 의미가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예수 그리스도의 관심과 사랑에서 제외된 사람은 이 세상에서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악인을 버리심으로 기쁨을 취하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도리어 하나님은 겔18:23“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어찌 악인이 죽는 것을 조금인들 기뻐하랴 그가 돌이켜 그 길에서 떠나 사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악인 그가 악한 생활에서 돌아서서 참된 삶을 살기를 원하시는 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목숨까지 버리시며 사랑하는 여러분들의 죄를 구원하신 것처럼, 여러분들의 이웃에 대한 참 사랑을 전도와 봉사로써 나타내시기를 바랍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구원 받은 자로서의 행할 바를 행하는 성도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성경은 이러한 예수님의 자비의 뜻을 친히 제자들에게 잘 보이셨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은 여리고에 이르렀을 때 소경 거지 바디매오를 그를 고쳐주신 것입니다.


  3. 예수님께서 머물러 서십니다.

  1) 부르짖는 소리를 듣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님은 무리 중에서 들려오는 한 소리를 듣기 위해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설교 말씀 듣기를 기다리는 무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바디매오의 간구에 관심을 보이셨습니다. 그분은 긍휼을 간구 하는 자의 소원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갈급함을 주님께 아뢰기에 주저하지 마시고 예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2) 소원을 묻기 위해서입니다.

  머물러 서신 주님은 '네게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의 소원을 이미 알고 계셨지만 그의 확실한 믿음이 고백을 듣기 위해서였습니다. 주님은 우리의 소원을 아십니다. 또한 그것을 이루실 충분한 능력이 있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여러분들의 진실한 신앙의 고백과 간절한 부르짖음을 기다리십니다. 할렐루야!


  3) 구원을 베푸시기 위함이었습니다.

  그의 소원을 들으신 주님은 그에게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바디매오를 구원하신 주님은 우리도 능히 구원하실 수 있습니다. 가난과 질병과 환란으로 인해 절망 중에 있는 우리를 구하시기 위해 오늘도 그 걸음을 멈추시고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모든 짐을 주님께 맡겨드리고 기꺼이 그의 뒤를 좇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결론. 바디매오를 배웁시다.

  1) 그는 가난한 소경 거지였습니다.

  예수님의 걸음을 멈추게 한 자는 바로 디매오의 아들로 소경이며 거지인 바디매오였습니다. 그는 보이지 않는 눈으로 길에 앉아 구걸을 하는 가난한 자로서 아주 비참한 처지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비천한 자신에 대해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환경을 원망하거나 저주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가능케 하심을 믿었습니다. 그의 삶에는 소망과 용기와 믿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외모를 보시지 않습니다. 도리어 가난과 병으로 말미암아 슬픔과 상처를 받아서 고통당하는 잃어버린 영혼들을 찾고 계시는 분이십니다.


  2) 그는 간절하게 부르짖었습니다.

  문제 해결을 위하여 긍휼을 부르짖는 그에게(막10:47) 많은 사람들은 꾸짖음으로 대했습니다. 그러나 바디매오는 이에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그는 더욱 큰소리로 부르짖어 드디어 그 기도가 예수님의 귀에 들려지게 했습니다. 주님을 향한 진실한 믿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간절한 소망을 가진 자는 세상적인 어떤 방해나 자신의 수치나 물리침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는 적극적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간청한 것입니다.


  3) 큰 믿음을 소유한 자였습니다.

  '百聞이 不如一見'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백 번 듣는 것이 한 번 보는 것만 같지 못하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롬 10:17은 말씀합니다. 믿음은 보는 것이 아니라 들음에서 나옵니다. 바디매오는 아무것도 볼 수 없는 소경이었으나 들음으로써 큰 믿음을 소유할 수 있었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실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이여 여러분들도 이런 확신을 가지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할렐루야!


예수님이 오신 목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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